‘다큐공감’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한탄강은 흐른다
‘다큐공감’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한탄강은 흐른다
  • 이가영 기자
  • 승인 2019.01.13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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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KBS
사진 : KBS

 

[톱뉴스=이가영 기자] 꽁꽁 얼어붙었다. 길이 141km, 평균 강폭 60m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다.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철원, 포천, 연천을 두르고 임진강에 합류하는 강, 전쟁의 기억을 품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흘러오는 강, 민족의 큰 아픔을 품었으나 탄식할 ’탄(嘆)’이 아닌 여울 ‘탄(灘)’을 쓰는, 이 강의 이름은 큰 여울, ‘한탄강(漢灘江)’이다 

한겨울, 이 거대한 얼음 덩어리에 ‘쩍’하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도끼질을 하고 있다. 이윽고 전기톱까지 동원하여 얼음을 깬다. 

얼음장 밑 차가운 물에 손을 집어넣더니, 어영차, 그물을 건져 올린다. 무겁게 꽉 차 있던 물고기가 얼음 위로 쏟아진다. 흡사,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보였던 겨울 강, 그 아래엔 뜨거운 생명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35만 년 전에 발원하여 오늘에 흐르고, 북한에서 발원하여 남한으로 흐르고, 추운 겨울에도 생명을 품고서 흐르는,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준 고마운 강, 그 강에 기대어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그리고 다시 그 아들의 아들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탄강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한탄강은 흐른다

주상절리의 경관이 아름다운 한탄강. 배를 타고 경기도 연천군 재인폭포 아래쪽으로 흘러가다 보면 절벽 위에 집 한 채가 보인다. 강에서 보면 까마득한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것 같지만 도로 쪽에서 보면 그저 넓은 들녘에 자리 잡은 평범한 농가로 보이는 집, 이 절묘한 위치에 사는 이는 한탄강 어부 유기환 (66세) 씨다. 

평안북도 강계에서 피란을 내려왔던 그의 아버지는 무일푼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했다. 땅 한 평, 집 한 칸 없던 아버지는 그저 배고픔이나 면하라고 어린 아들에게 한탄강에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는데 세월이 흘러 그 아들은 한탄강 어부가 되었다. 

“보기엔 아름답죠. 강 위에 배 띄어놓고 물고기나 잡고 있으니. 그런데 생업이잖아요. 실상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안개가 덮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폭풍우가 몰아쳐 급류에 휩쓸릴 수도 있는데,  결코 녹록지 않은 한탄강 어부의 삶을 이제는 유기환 씨의 아들인 유흥용(36) 씨가 이어간단다.

“어부가 꿈은 아니었죠. 하지만 제게 가장 익숙한 일이고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더라고요.” 

피란민인 할아버지에게 굶주림을 면하게 했던 강, 무일푼이었던 아버지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강, 그리고 다시 그 아들인 유흥용 씨에게로 흐르고 있는 강, 그렇게 대를 이어 한탄강에 기대어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 북에서 남으로, 한탄강은 흐른다

연천에서 한탄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포천과 철원의 경계를 이루는 구역이 나온다. 강폭 사이에 경계가 있어 강물의 한쪽 편은 철원, 또 다른 편은 포천이다. 즉 강의 한쪽 편에선 포천 사람이 물고기를 잡을 수가 있고 또 다른 편에선 철원 사람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포천 어부인 김분영(63) 씨와 철원 어부인 김철수(66) 씨,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두고  싸울 법도 하건만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단다. 이들은 바로 한 아버지에게서 난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란을 나온 피란민이었다. 같은 연백군 사람들과 함께 피란 배를 타고 여수로 갔다가 휴전 후 터를 잡은 곳이 쑥대밭이 되어 있던 한탄강 유역 냉정리였다. 황해도에서 어부였던 아버지는 한탄강에서도 고기를 잡았고, 그 업을 여섯 아들이 차례차례 돕다가 마지막의 두 아들이 끝내 남아 어부가 되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전쟁 겪은 사람들이에요.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거나 그때 태어난 사람들이거나... 그 후에 난 사람도 피란민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니 사는 것 자체가 난리였던 사람들이죠.” 

전쟁과 가난을 지독하게 겪었지만 사는 것이 원래가 다 그런 줄로만 알아서 고생이라고 자각할 틈도 없었다는 사람들, 해마다 한탄강을 바라보며 그 강 거슬러 올라갈 날을 꿈꾸었지만  차가운 겨울 강보다 더 차가운 세월만 흘러갔다.

올해에도 강은 얼었다. 하지만 김분영 씨 형제, 그 얼음에 구멍을 뚫는다. 엄동설한에 땀이 나도록 힘겹게 구멍을 뚫으니 그 아래, 한탄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그물엔 가득 물고기가 들었다.  

KBS 1TV ‘다큐공감’은 13일 오후 8시 1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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