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산천어 축제, 인구 2만 5천의 작은 산골 마을 얼음 벌판 위에 써낸 기적
화천 산천어 축제, 인구 2만 5천의 작은 산골 마을 얼음 벌판 위에 써낸 기적
  • 이가영 기자
  • 승인 2019.01.2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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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KBS
사진 : KBS

 

[톱뉴스=이가영 기자] 20일 방송된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이하 다큐 3일)에서는 화천 산천어 축제 현장에서의 3일을 담았다. 

첩첩산중 산골 마을, 강원도 화천의 겨울이 떠들썩하다. 인구 2만 5천, 접경지역인 탓에 주민보다 군인이 많은 전통적인 군사 도시. 지자체 중 유일하게 3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어 군인을 찾아온 면회객들이 아니면 좀처럼 외지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던 이곳의 겨울 풍경이 바뀐 건 2003년. 16년 전 처음 시작된 화천 산천어 축제는 이제 단순한 지역 축제를 넘어 지역 경제를 책임지는 ‘굴뚝 없는 공장’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축제 기간 화천을 찾는 관광객만 170만 명, 화천 인구의 60배에 달한다. 이 중 외국인 관광객만 해도 10만 명이 훌쩍 넘는다. 축제를 통한 지역 경제 효과는 자그마치 1200억 원, 축제에 투입되는 군 예산의 30배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바야흐로 최전방 산골 마을이 이루어낸 ‘겨울의 기적’이다.

‘다큐 3일’은 축제 이틀 전부터 축제 2일차까지, 축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화천 주민들의 동선을 따라 ‘겨울의 기적’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길이 2.5km, 폭 120m의 화천천 얼음 벌판에 뚫리는 2만 개의 얼음 구멍, 일시에 수만 명이 몰릴 얼음판의 안전 관리, 매일 매일 방양되는 총 190톤 산천어의 원활한 수급. 이 모든 건 화천 주민들의 손으로 이뤄진다. 내 고향 내 고장을 찾을 수많은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추위도 밤낮도 잊은 채, 기꺼이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 얼음 땅의 기적을 가능케 한 건, 내가 나고 자란 터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었다.

■ 특명! 얼음 구멍 2만 개를 뚫어라, 얼음 두께 30cm를 유지하라

산천어 축제의 백미는 단연코 얼음낚시다. 30만㎡에 달하는 광활한 얼음 벌판 위로 빼곡하게 뚫린 구멍에 낚싯대를 넣어 고기를 잡아 올린다. 개장과 동시에 수만 명의 인파에 동시에 빙판 위로 올라올 것을 대비, 반드시 2m*2m 간격을 두고 구멍을 뚫어야 한다. 축제 이틀 전, 아침부터 작업자들이 분주하다. 단단한 얼음판 위, 간격에 맞춰 2만 개의 구멍을 다 뚫으려면 하루가 짧다. 얼음 구멍을 미리 뚫어놓으면, 밤새 차오르는 물에 구멍이 다시 얼어버리기 때문에 적당한 깊이를 지키는 것도 일이다. 

낚시 구멍을 뚫으며 주민들은 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축제를 앞둔 설렘도 잠시, 축제가 다가오면 더욱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화천군 재난구조대원들이다. 30cm가 훌쩍 넘는 단단한 얼음이지만 그 아래론 수심 2m의 물길이 흐르고 있다. 자칫 얼음이 깨지기라도 하면 즉시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산천어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얼음 두께 30cm를 유지하는 건, 축제 진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육안으로 얼음판의 안전을 확인할 수는 없는 일. 재난구조대 소속 다이버들은 날마다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간다. 얼음 두께는 얼마나 되는지, 얼음의 강도는 적당한지, 방양한 산천어들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안전로프 하나에 의지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물속을 누빈다.  

■ 축제는 시작됐다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개월간 준비한 축제가 드디어 시작됐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새벽부터 몰려드는 관광객들. 설렘과 기대를 안고 화천을 찾아온 손님들이 주는 활력도 잠시,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긴장의 끈을 조인다.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누군가의 추억과 기쁨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추위가 내리고 얼음이 얼기 시작한 후, 단 하루도 거른 적 없는 새벽 시간 얼음판 점검. 깜깜한 어둠 속 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해 손님들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 확인을 거친다.

관광객들의 즐길 거리를 책임지는 사람들 못지않게 분주한 사람들이 또 있다. 신나게 놀고 즐겼으면, 든든하게 배를 채울 요깃거리가 필요한 법. 관광객들의 입을 즐겁게 해줄 먹거리 부스와 산천어 요리터도 쉴 새가 없다. 입김이 폴폴 나는 추운 부스 안에서 손님들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 국물을 끓이고, 밀려오는 손님들에 대비해 새벽 찬 서리를 맞으며 장작불을 지핀다.

■ 이 기적의 뒤엔

하얀 얼음 벌판 위, 검은 점이 촘촘히 찍힌 듯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내 고장 화천에 귀한 발걸음을 해준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 관광객들의 손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산천어 수급팀은 부지런히 축양장과 축제장을 오간다. 다함께 행복한 축제를 위해 산천어가 가득 담긴 무거운 통을 옮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에 맞춰 축제장 곳곳에 산천어를 방양하는 것이다. 고기 반 물 반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산천어를 풀었으면, 잡아야 제 맛. 축제장 곳곳에 배치된 도우미들은 혹여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까 연신 주위를 살핀다. 얼지 않는 추억과 녹지 않는 인정.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이 된다면,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한 정情이 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제 몫을 하겠다는 사람들. 그들을 움직인 건 자신의 노력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보람과 내 고향 내 고장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자부심이다. 산골짜기 얼음 나라 화천의 겨울은, 주민들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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