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칼럼] 올레길 위에서
[교사칼럼] 올레길 위에서
  • 김변호 편집국장
  • 승인 2016.02.25 1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돌개처럼 묵묵히, 길처럼 끝까지

왼편에

▲ 왼편에 작은 바위섬 외돌개, 올해도 자연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른 봄내음을 맡기 위해 제주도를 찾아 나섰다. 이맘때 제주도에는 봄은 왔으나 바람은 아직 차가워 인적이 드물다. 2년 전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섭지코지를 걸었을 때 그곳에 거친 파도의 숨소리와 차가운 바위들이 내뿜는 은밀한 음성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제주도를 다시 걸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길이란 늘 신비하고, 걷는다는 것은 놓쳐왔던 삶을 돌아보는 멈춤의 여로이다.


 올레길 중에 가장 쉽다는 7코스를 걸었다. 구름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에 물비늘이 일렁이고 그 위로 장엄하게 서있는 외돌개와 마주했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이지만 그 꼭대기에는 소나무가 있고 새들도 쉬어가는 듬직한 바위섬이다.


 올해도 자연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파도의 매질에도 짓궂은 비바람에도 외돌개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다. 더 고독하게 더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태를 보기 위해 몰려들어도 조용히 태양의 조명을 받으며 도도하게도 머물러 있었다. 외돌개를 벗 삼아 걷고 있노라면 무슨 생각이든 던져보지 못할 것이 없다.

  

필자가 물려받은 세대는 그저 남들보다 ‘잘’ 하는 것을 강요받은 세대라고 생각했다. 교육이 그랬고 사회가 그랬다. 너무 애쓰지 말고 ‘즐기라’는 위로를 담은 책들이 즐비했고, 결국엔 끝까지 ‘버티라’는 영화 속 내레이션으로 위안을 삼는 세대랄까.


 얼마 전 졸업식을 앞두고 학생들과 졸업가를 연습하는 데 몇몇은 수학문제를 푸느라, 그리고 몇몇은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정신없는 눈치였다. ‘마지막’이라는 낭만도 모른 채 그저 ‘잘’해야 한다는 무의미한 서바이벌로 뛰어드는 모습을 미리 본 것이다. 필자가 아는 지인 중에 목회를 하는 귀한 분이 있는데 때마침 그분으로부터 들은 조언이 떠올랐다. 인간은 결국 자신을 가슴 뛰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향해 걸어가게 되어있다는 짧은 아포리즘과 같은 말이었다. ‘소명’을 풀어놓은 말이지만 뇌리에 진하게 박힌 이 한마디에 가슴이 뛰었었다. 그리고 졸업식 날 노래하는 아이들 머리위로 4박자 지휘를 휘저으며 정말로 가슴 뛰는 일을 찾는 경쟁을 가르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상상을 했다.


 다시 새로운 학년이다. 1월이 아닌 3월이 되어야 처음이 시작되는 학교만의 일상. 그저 아이들과 쫓기듯 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묵묵히 그리고 말없이 자기의 길을 가는 삶을 연습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아주 오래 걸리고 비록 고독할지라도 자연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외돌개는 지금도 말하고 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길임을.


노을 빛 올레길 끝에서 다시 앞을 본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