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3일' 완도 평일도 다시마 수확, 정직한 땀방울이 빛나는 곳
'다큐3일' 완도 평일도 다시마 수확, 정직한 땀방울이 빛나는 곳
  • 이가영 기자
  • 승인 2019.06.0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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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KBS
사진 : KBS

 

[톱뉴스=이가영 기자] 2일 방송되는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이하 다큐 3일)에서는 완도 평일도 다시마 수확 72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한해, 완도 평일도에서는 총 3,049톤의 다시마가 생산됐다. 다시마로 창출되는 한해 수익만 약 300억 원. 다시마는 가난했던 섬마을 사람들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섬의 젊은 사람들(20~60대)이라면, 누구나 다시마 농사를 짓는다. 매년 5~6월, 두 달간 평일도의 밭과 논, 공터 곳곳은 모두 다시마 건조장으로 변한다. 마을을 까맣게 수놓은 다시마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마 섬’이라는 평일도의 별칭이 이상할 것도 없다 싶다. 늦봄부터 시작되는 약 두 달 간의 작업은 평일도 주민들에게 있어 든든하게 한 해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수월하지 않다. 빠르면 자정, 늦어도 새벽 3시엔 바다에 나가 다시마를 수확해야 한다. 햇빛을 보면 다시마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알긴산 성분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이 트기 전, 수확한 다시마를 가져다 건조장에 널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시기가 되면 평일도 사람들은 밥도 거르고 잠도 줄인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다시마를 수확한다. 어둠을 뚫고 바다에 나가 다시마를 건져오고, 그 다시마를 다시 건조장에 널어 말리고, 낮 시간 햇빛에 바삭바삭 마른 다시마를 다시 거두어 정리한다. 그렇게 집에 와 밥 한 술 뜨고, 눈 좀 붙이고 나면 어김없이 어제와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이다.

‘다시는 안 하마’ 해서 다시마라 이름 붙여졌다는 누군가의 농엔 그 정도로 치열하고 고단한 어민들의 삶이 녹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든 일을 계속하는 건, 그래도 일한 만큼 벌고 땀 흘린 만큼 얻는 ‘정직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벗어나고도 싶었다. 어둠과 싸우고, 뜨거운 햇살과 싸워야 하는 고된 바다 일 대신 조금 편하고 쉬운 일을 찾으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숱한 방황의 끝에서 결국 다시 떠올린 건 아버지와 아버지가 있던 고향의 바다였다. 그 시절, 아버지가 흘렸던 귀한 땀방울의 가치를 알기에 내 아버지가 그랬듯 다시 이 바다에 기대어 살아간다. 

■ 정직한 땀방울이 빛나는 곳

이쯤 되면 요령이 좀 생기지 않을까 싶지만 여전히 일은 고되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요행을 꿈꿔보지만 애초에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평일도에서 ‘다시마로 먹고 사는 일’은 그렇다. 누구나 한 방을 꿈꾸고 누구나 조금 더 편하고 쉽게 살길 바라지만 다시마 농사를 하다보면, ‘세상에 그런 건 없어. 부지런히 움직인 만큼 먹고 사는 거야’ 알려주는 것만 같다. 일한 만큼 벌고, 땀 흘린 만큼 얻는다는 말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늦가을, 다시마 종묘를 바다에 심은 후 한겨울이 되면 따가운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일일이 솎음 작업을 거쳐야 한다. 배에 무릎 꿇고 앉아 바다 속을 들여다보며 손으로 하나하나 다시마를 솎아내다 보면 다리며, 허리며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 수면에 반사된 햇빛으로 인해 얼굴은 까맣게 그을리기 일쑤. 그렇게 겨우내 솎음 작업을 거쳐야 5월, 그 결실을 볼 수 있다. 

자연의 일이란 게 모두 뜻대로 되는 건 아닌지라 바람만 불었다하면 초조한 마음으로 바다를 살피고, 심상치 않은 파도의 높이에 속을 끓이기도 한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늘의 뜻이다. 그저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평일도에서는 정직한 땀방울만이 빛을 볼 수 있다. 다시마는 그 당연한 사실을 새삼 다시 깨우쳐 준다. 

▶ ‘다르게’ 산다

모두 함께 땀 흘리는 가운데 유독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해내는 한 사람이 있다. 묵묵히, 열심히, 분주하게. 한병철 씨는 8년 전 평일도에 들어왔다. 공부를 썩 잘해 일찍이 도시로 나가 대학 공부까지 마친 수재였다. 큰 꿈을 품고 여러 차례 시험에 도전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작은 회사에 들어가 가정을 이루고 살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았다.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마음이 부대끼는 날들이 늘어갔고, 힘든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었다. 

고민이 깊었지만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렇게 그는 딸과 아내를 도시에 두고, 부모님이 계신 섬으로 들어왔다. 도시에서의 삶이 어느덧 익숙해졌는지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 일은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땀 흘리며 일하는 그 순간에 집중하다 보니 삶은 한결 여유를 찾았다. 만만치 않은 삶, 누군가는 뙤약볕 아래서 허리 한 번 못 펴고 하는 이 일을 그저 힘들다 여길지 모른다. 

현병철 씨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으니. 하지만 그는 이제 ‘다르게’ 산다. 몸이 좀 편한 대신 마음을 괴롭히는 도시에서의 삶 대신, 몸은 좀 불편하지만 마음이 편안한 지금의 삶이 좋다. 수많은 방황과 고민의 끝에서 그는 이제야 답을 찾은 것만 같다. 땀 흘린 만큼 얻는 노동이 얼마나 귀한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말이다.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모진 바람을 기약 없이 견뎌야 한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 이제 기계의 힘을 많이 빌리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5m에 달하는 무거운 다시마를 끌어올리다 보면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다시마를 걷어 오시면 온 식구들이 나가 바닷가 바위 위에 다시마를 널었다. 기계가 없어 온 힘 다해 다시마를 끌어 올려야 했고, 그 많은 다시마를 바위 위로 나를 방법이 없어 지게를 짊어지고 다시마를 옮겼다. 

지금이야 외부에서 일을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이라도 있지만, 그땐 그 마저도 없어 온 식구가 나서야만 한 해 다시마 농사를 해낼 수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하는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지만 캄캄한 어둠을 뚫고 바다에 나갈 때면 온 신경이 바짝 선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바다 위, 수십 년을 이렇게 사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새삼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아버지의 젊음을 먹고 자랐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흘렸던 귀한 땀방울은 다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자식들에게 전해졌다. 아버지가 되고 난 후에야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너른 바다 위에서 그때 그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 다시, 아버지의 바다로

소랑마을에 사는 72세 이넙단 할머니, 그녀는 11년 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고, 세심한 남편이었으며, 존경 받는 아버지였다. 준비할 새도 없이 찾아온 이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그녀는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멀리서도 그런 엄마를 알뜰살뜰 챙기는 자식들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동네 친구들 덕에 그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지금, 딸 권오순 씨가 이넙단 할머니의 곁을 지킨다. 어깨수술을 해 생활이 불편한 어머니를 챙기러 도시에 살던 딸이 섬으로 들어온 것이다. 오순 씨에게 고향 평일도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일부러 도시로 학교를 갔고, 도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다시마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길러내던 부모님의 삶이 존경스럽고 위대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쩐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바다로 다시 돌아왔다. 

아버지를 그렇게 보낸 후, 못해드린 것만 자꾸 떠올랐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 시간이 얼마나 귀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하던 엄마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왔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잘해드리고 싶어서. 아버지를 평생을 오고 다니던 바다가 보이는 곳에 모셨다. 오순 씨는 아버지가 계시는 이곳에서, 아버지가 계시던 저 바다를 보며 그리운 마음을 달랜다.

■ 투박하지만 진한

마음은 크지만 표현이 힘들다. 가까이 있다 보니, 더 그렇다. 고된 일을 평생 함께해준 고마운 아내,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을 묵묵히 품어준 아버지, 고단한 삶 속에서도 언제나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금쪽같은 자식들. 고단한 새벽 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그제야 한 술 뜨는 아침 상, 함께 한 세월이 길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기 때문일까. 부부의 식탁에는 침묵이 맴돈다. 괜히 쑥스럽고 머쓱해서 표현이 힘들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다 안다는 듯 생긋 미소만 짓는다. 

온종일 작업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부자, 데면데면한 둘 사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식탁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 밥을 먹는다. 하루의 피로를 씻어줄 소주는 1인 1병, 음식을 권하거나 술을 따라주는 간지러운 행동은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왜 서로에게 할 말이 없겠는가. 부자는 카메라 앞에서 생전 꺼낸 적 없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형제들 중 본인만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인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쓰였다는 아들,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사는 이 시간이 즐겁고 재밌단다. 구순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이 안쓰럽고 못내 맘에 걸리지만 자신의 일을 이어 받아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내심 흐뭇하다. 평일도에는 투박하지만 진한, 마음이 있다.

▶ 배에 새긴 사랑

강민호, 유나호, 정원호, 혁준호… 평일도 앞바다엔 자식 이름을 따서 만든 배 이름이 많다. 월송마을 김민수 씨의 배 이름은 ‘강민호’. 큰아들 강식이의 ‘강’ 자와 작은아들 강민이의 ‘민’ 자를 따서 지었다. 말로는 멋쩍어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늘 타고 다니는 배에 새겼다. 다시마 철만 되면 못 먹고, 못 자고 일하는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던 22살의 속 깊은 장남은 휴학을 결심했다. 부쩍 힘들어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만 보느니, 고향에 와서 1년 간 부모님을 도와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더위와 싸우고 어둠과 싸우며 해야 하는 이 일을 물러주기 싫어 피땀 흘려 일했고, 그렇게 자식을 도시로 유학 보낸 부모의 입장에서 아들의 결정을 흔쾌히 수용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완강한 아들의 태도에 아빠도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어리지만 의젓한 아들은 매일 같이 아버지를 돕는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 든다. 힘들게 일해 힘들게 벌지만,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행복해지는 게 아빠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멋없는 아빠는 배에 자식들의 이름을 새겼다. 그렇게 아빠는 늘 자식들과 함께 바다에 나간다. 고단한 바다 일을 견디게 해주는 이토록 커다란 힘. 무뚝뚝하고 거친, 섬마을 아버지들이 새겨둔 사랑이다.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은 2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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