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 빗내농악 보존회, 국가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인정!
금릉 빗내농악 보존회, 국가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인정!
  • 김변호 기자
  • 승인 2019.12.21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 단체(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인정받아

경상북도 무형문화제 제8호 금릉 빗내농악 보존회(회장 위동철)가 문화재청으로부터 지난 9월2일에 국가무형문화재 보유 단체(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로 인정받아 인정서를 문화재청장으로부터 교부받았다.

문화재청은 오는 12월 23일(월) 12:00에 <'2019년도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보유단체) 인정식>을 개최하고 인정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이로써 금릉 빗내농악 보존회는 문화재 보급을 위해 힘을 얻게 되었다. 김천 금릉빗내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까지 된 자랑스런 우리 고유 선조들이 물려준 자랑스런 전통음악이다.

위동철 회장은 “앞으로 빗내농악이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를 향해서 퍼져 나가 국외를 선양하기를 꿈꾸고 있다. 세계 곳곳마다 살고있는 교민들이 빗내농악을 초청해주면 어디든지 날아가 우리 농악을 알리고 싶다. 단원들이 전 세계를 향해서 나가기를 소망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금릉 빗내농악 보존회 회장 위동철. 톱뉴스.
금릉 빗내농악 보존회 회장 위동철. 톱뉴스.

금릉 빗내농악의 유래는 1984년 12월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빗내’는 광천동의 자연마을 이름으로 음력 정월 초엿새에 동제를 지내고 농악을 쳤다. 마을 일대는 지대가 낮아 수해가 빈번하였던 탓에 자연재해에서 벗어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 빗신굿이 열렸으나 지금은 단절되었다.

1949년 8·15 기념행사 농악경연대회가 열렸을 때, 경북 김천대표로 빗내마을과 황새골이 선정되었다. 본래 빗내농악은 무을농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라 하며 5대 상쇠인 이남훈에 의해 비로소 빗내농악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빗내농악 계보도의 시작에 놓인 정재진, 이군선 등은 모두 무을농악의 계보도에도 등장한다. 또 무을농악 계보도에 등장하는 이남문은 빗내농악의 이남훈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남훈은 무을에서 농악을 학습하여 빗내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6대 상쇠인 김홍엽은 빗내농악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데 각별하게 기여하였다. 1962년 제 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1990년 3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도 출전하였으며, 문광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까지 등재되었다.

치배구성은 쇠·징·장구·대북·소고와 잡색(사대부·각시·총잽이)으로 편성된다. 대북은 흰 고깔을 쓰며, 사대부는 ‘士大夫’라 쓴 두건을 쓰고 부채와 담뱃대를 든다. 각시는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으며 포수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한다. 영기수와 농기수도 구성된다. 기수는 흰 저고리와 흰 바지에다 행전을 하고 검은 조끼를 입으며, 삼색띠를 두른다. 쇠, 장구와 소고를 연주하는 잽이들은 머리에는 전립을 쓰고, 북잽이는 흰 꽃으로 장식된 고깔을 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