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존재론적 인플루언서다
우리는 모두 존재론적 인플루언서다
  • 김유진 기자
  • 승인 2020.10.1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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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16년, 직장 생활 N년 차쯤 되어 보니 필자의 직업이 3번쯤 바뀐 것을 알았다. 교사, 직장인, 기자까지… 은퇴하려면 30년은 넘게 남았으니까 적어도 4번 남짓 남은 것 같다. 필자도 부를 쌓기 위해, 다가올 직업적 변화를 위해 나를 위한 투자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문·이과 경계를 허문 여러 지식을 찾아 일단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싶으면 습득하고, 창조되는 직업을 찾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직업적 ‘인플루언서’.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 진입장벽이 현저히 낮은 이 직업은 ‘소통형 직업’이다. SNS에 업로드를 하면 소위 팬들이 즉각 반응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고 답해주며 남들에게 비밀인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만든다.

지금은 ‘인플루언서’가 하나의 직업군이 되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에게 돈이 아닌 ‘하트’를 눌러주던 시대가 있었다. 그랬던 ‘당신’은 왜 나를 고객으로만, 아니 돈으로만 보게 되었는가.

 

【‘당신’의 옷과 가방은 왜 이렇게 탐이 나나】

내가 좋아하는 ‘당신’이 하는 것은 다 따라하고 싶은 심리, 우리는 ‘팬심’이라고 부른다. 내 말에 즉각적 답변을 해주는 ‘당신’을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는가? 그런 당신이 예뻐 보이고 멋져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내가 좋아하는 ‘당신’도 처음부터 나에게 옷과 가방을 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소유하고 있던 물건을 소개했을 뿐인데, 내 눈에는 그것도 반짝 빛났던 것이다. ‘당신’ 역시 내 질문에 대답만 했을 뿐. 그 사이에 돈이 스쳐 지나갔지만 우리는 ‘당신’을 돈을 쓰게 만드는 ‘지갑 도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다분히 목적성을 띤, 직업적 ‘인플루언서’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모였다 싶으면, 바로 지갑을 열게 만들어 우리도 모르게 ‘당신’을 좋아하는 순수성을 어느 순간 유린당한다.

똑똑한 인플루언서는 우리의 순수성을 해치지 않게 교묘히 가려 이용하기도 하고, 능수능란 언변술사로 꾀어내기도 한다. 필자도 눈치 채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그저 그 사람이 좋았던 것뿐인데, 뒷광고 논란에 사과문이 등장하니 몇 년 동안 좋아했던 마음에 배신감까지 찾아들어 조용히 ‘구독취소’를 누르게 되었다.

 

【믿었던 너마저…뒷광고 논란에 분노하는 사람들】

최근 인플루언서들의 숫자가 폭발하며, 돈과 물건을 거래하는 직업적 특색‘만’ 강화되자 공정거래위원회의 단속이 강화되었다. 이에 단속반에 걸리게 된 사람들은 뒤늦은 사과문을 올렸고, ‘뒷광고’ 논란이 불거졌다. 사람들, 아니 팬들 사이에서 한동안 매우 뜨거운 감자였다.

필자가 조용히 응원하고 있던 김초롱(가명) 유튜버는 책을 리뷰하고 소개하고, 늘 희망과 꿈을 실어주던 광명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가 ‘뒷광고’ 논란에 치닫자, 80여 권에 달하는 책을 광고 받았으나 기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거센 항의가 빗발치자 사과문을 연달아 올리며 구독자들에게 사죄를 했지만, 이미 댓글창은 싸늘하게 돌아선 사람들의 댓글로 가득했다.

필자도 영상들을 지속적으로 시청하며 그가 소개한 책들을 구매했다. 또 그의 말과 마음가짐을 상기시키며 되뇌었다. 심지어 온라인 클래스를 열어 강의하는 것도 꼬박 구매하여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들었다. 이런 필자가 이런 ‘당신’인 것을 알고 나니 실망스럽고 혼란스러운 것은 어찌 막을 도리가 없더라.

 

【직업적 ‘인플루언서’에서 존재론적 ‘인플루언서’로】

유명세를 타서 어느 정도 공인이 된 ‘인플루언서’들의 한 순간 몰락은 직업적 측면에 대해서 되짚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팬’과 ‘고객’의 애매한 경계, 사람들의 사랑이 분노가 되기도 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도 개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대적 상황이 변모했기 때문이다. ‘초연결(Hyper-connected)’ 차원으로 변경된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센서 기술과 데이터 처리 기술 발달로 많은 데이터들이 수집되었고 스마트폰 보급으로 개인을 둘러싼 네트워크는 점점 더 촘촘해졌다. 오히려 예전보다 관계가 중요해졌다.

이 상황을 인지했다면, 다음은 모두의 역할이 ‘인플루언서’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에게 댓글을 단 ‘나’도 당신에게 인플루언서다. 악플로 은퇴를 이룩하게 만든 것은 서로가 ‘인플루언스’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당신에게 ‘인플루언스’ 된다면, 우리는 모두 존재론적 ‘인플루언서’다. 네트워크적 그물망에 서로가 얽혀있어 따뜻한 말과 위로를 건넨다면, 좋은 영향을 주는 선순환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인플루언서’가 직업인 줄도 몰랐던, 웃고 떠들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므로 ‘당신’이 수려한 외모가 아니더라도, 해박한 지식으로 모든 것에 답변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당신’의 존재가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면 어떨까.

 

인플루언서 :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 감화시키는 사람. [네이버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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