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4) 특별한 양육법 : 예리하게 키워라 - ‘어렵다’와 ‘힘들다’는 다르다.
[교육칼럼] (4) 특별한 양육법 : 예리하게 키워라 - ‘어렵다’와 ‘힘들다’는 다르다.
  • 최지연 인재기자
  • 승인 2021.02.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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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메타인지를 키워주기 위해 필요한 요소. 예리함.

필자가 공부방을 시작할 때 처음 만난 아이와의 일이다.

이번 칼럼은 이 아이와 일화를 통해 공부 감성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작은 팁을 나누고자 한다.

oo이의 엄마는 은행원이었다. 그날도 바쁜 엄마는 짬을 내서 혼자서 상담을 왔었다. 어학원, 논술, 태권도, 피아노, 방과후 등등 모든 걸 세팅해서 보내던 중이었는데, 그중에 전과목 학원을 정리하고 공부방으로 옮기겠다고 상담을 왔다.

바로 다음 날부터 아이는 공부방에 왔다.

아이는 무척 똑똑하고 마음씨가 정말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부에 대해 자신감도 없고, 공부 감성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가 되면 수학에 [큰 수]라는 단원이 있다.

말 그대로 큰 수를 배운다. 억, 조와 같은 단위를 배우고 큰 수들의 덧셈과 뺄셈을 배우는 단원이다.

oo이의 학습능력으로는 어려운 단원이 아니었는데, 아이는 한숨만 푹푹 내어 쉬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문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참을 끙끙 앓다가 한마디 내뱉었다.

“어려워요.”

 

나는 수업을 멈추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몇 번 문제가 어렵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힘들어해.”라고 물었다.

아이는 “어려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자, 여기 콩이 가득 들어있는 한 자루가 있어. 반대쪽에는 빈 자루가 하나 있고,

여기서 콩을 한 알 옮겨 담으면 어려워?”

아이는 대답했다. “아니요. 쉬워요.”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여기 있는 콩 한 자루를 빈 자루로 한 번에 한 알씩 모두 옮겨 담아야 해. (아이는 이미 한숨을 내어 쉰다) 이건 어떨까? 어려울까? 힘들까?”

“힘들어요.”

“그래, oo이가 덧셈을 못 하진 않아. 오히려 잘하는 편이지. 그런데 숫자가 너무 많아지니까 힘이 드는 거야.”

나는 그렇게 ‘어렵다’와 ‘힘들다’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것은 배우면 된다.

그렇다면 힘이 드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습게 들리겠지만 힘을 내야 한다.

칠판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그렇게 oo이와의 대화는 이어져갔다.

“힘을 내고, 힘을 내고, 더 힘을 내고. 그러다 어느 한계에 부딪힌다. 그럼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몰라요.”였다.

oo이의 이름은 교회를 다니는 부모님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을 법한 이름이다. 나는 이름을 힌트 삼아 모른다고 말하는 그 아이에게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기도해야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최상의 결괏값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벽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최선을 다했다면 그다음에 만난 컨트롤할 수 없는 벽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다음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4학년이 된 남자아이였고, 이미 공부 감성이 많이 무너져있었다. 엄마가 세팅해주는 대로 학원을 가야 하고, 공부방도 엄마가 정해준 곳에 혼자 왔어야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빡빡한 일정이 안타까워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면 자기는 배우는 것이 너무 좋다고 대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는 것이 너무 좋다는 아이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앞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많은 학원의 많은 숙제를 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잠들 수 없었다.

무너진 공부 감성으로 마음의 벽에 가로막혀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도 풀어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아닌 선생님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이 아이에게는 ‘기도해야지’라는 말이 숨을 쉴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그때부터 어렵지는 않지만 풀어내기 힘든 문제와 씨름을 시작할 때면 나는 “oo이의 할아버지가 새벽마다 oo이를 위해 얼마나 기도를 하실까~. oo이는 할 수 있어~.”라고 말을 해주면 아이는 자세를 고쳐 안고 이내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이며 문제를 풀었다. “어렵다와 힘들다는 다르다.”

그렇다. ‘어렵다’와 ‘힘들다’는 다르다.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고 명확하게 단어를 알려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아이들이 예리해지게 도울 수 있다.

문제 앞에서 ‘어렵다’와 ‘힘들다’를 구별한 것만으로도 이 아이는 큰 수라는 단원을 수월하게 넘어갔다. 앞으로 문제 상황 앞에서 일단 어려운 문제인지, 힘든 문제인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것과 힘든 것을 구별한 다음 각각 그 상황에 맞게 해결책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방법을 찾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주도학습이 완성되어 간다.

이쯤에서 앞선 칼럼에서 다루었던 메타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메타인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는 것

메타인지의 메커니즘은 실수

 

​수업을 들었지만, 아직 이해가 안 되고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이해를 못해서 모르는 건지, 알고 있지만 적용이 안 되는 건지, 힘든 것인지, 아니면 하기 싫은 것인지….

나의 지적인 상태와 내적인 에너지, 감정의 상태 등을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

‘어렵다’와 ‘힘들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만으로 oo이는 자신의 상태를 메타인지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공부 감성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풀지는 못하는 문제를 메타인지 하여 문제의 문제점 혹은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고 결론적으로 성적도 많이 올랐다.

소아정신과 교수인 신의진 박사는 많은 강연과 저서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를 통해 이야기한다.

“타고난 능력을 퇴화시키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타고난 것을 잘 보존하라. 무언가를 새롭게 배워서 알게 된다고 생각하고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한다.”

타고난 능력을 퇴화시키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기보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 즉 공부 감성을 무너뜨리지 말자. 옆집 아이보다 글을 좀 늦게 읽고, 연산을 좀 못하는 것이 느리게 키우는 것 같지만, 잘 지켜진 공부 감성이야말로 결국 탁월한 아이로 키우는 비법이다.

아이의 발달과 맞지 않는 빠른 학습으로 아이의 공부 감성을 무너뜨리지 말자.

아이 앞에 놓은 상황과 감정, 문제 앞에 깊게 대화하며 아이의 공부 감성을 높여보자.

예리하게!

그리고 탁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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