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아우의 인상화
[간호사의 단상] 아우의 인상화
  • 김혜선 인재기자
  • 승인 2021.02.15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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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

: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네이버 어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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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호사 회의시간이었다. 신규간호사의 아버지가 간호부로 민원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딸이 입사한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새벽 6시에 출근을 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오후 5시 정도까지 일하는데 경남 00에서 서울까지 올라가 일하는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 따졌다는 내용이었다. 상황 파악을 해보겠으니 어느 간호사의 아버지냐고 물었지만, 그제야 딸에게 피해가 갈 꺼라 생각하셨는지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 꼭 신규간호사들 밥 먹이며 일하라는 간호부의 지시가 회의시간에 하달됐다.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의 지나친 사랑은 자식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다. 20대 중반이 넘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직장에 전화하여 이름도 밝히지 않고 거의 욕설에 가까운 민원을 쏟아 붓는다는 건 제대로 된 부모의 사랑이 아니며 결코 자식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본인을 밝히고 찬찬히 사정을 이야기해도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사안이었건만 서로간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일이 되고 말았다.

예전에는 자식들을 과잉보호하는 모습을 일컬어 엄마들의 ‘치맛바람’이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헬리콥터맘’(helicopter mom)이라 한다. 이는 ‘아이들이 성장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어도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일에 다 참견하는 엄마’(네이버 시사상식사전)를 일컫는 용어다. 헬리콥터맘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학습 매니저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자식의 학점이 좋지 않으면 해당교수에서 따지며, 수강신청을 도맡아 해주고, 취직을 하면 부서 배치의 조정까지 하려고 든다.

이는 부모의 그릇된 사랑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독립’이다. 자녀가 독립된 개체로 홀로 설 수 있게 해주어 사회에서 ‘어른’으로서 온전한 몫을 해내게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당장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녀의 모습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결과물을 선뜻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는 결코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처 : 박광수 [광수생각]
출처 : 박광수 [광수생각]

 

박광수씨의 『광수생각』에 나오는 한 컷을 보며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해주어하는지를 알게 된다. 천둥, 번개, 바람, 소나기를 거치고 나서 만나는 무지개는 그냥 하늘에 있는 무지개가 아닌 나만의 무지개가 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 무지개를 만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며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은 천둥, 번개, 바람, 소나기를 거치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사람이 되어가는 법이다.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네이버 어학사전). 윤동주 씨의 시를 고민해보는 날이다. 자라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아우, 그 대답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든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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