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 칼럼] 고난은 표면적이다. 항거해야 한다.
[황정미 칼럼] 고난은 표면적이다. 항거해야 한다.
  • 황정미 인재기자
  • 승인 2021.06.07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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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과 보석으로 치장한 인테리어가 하얀 대리석 바닥과 맞물려 빛나고 있었다.

체인이 시그니처인 샤 0 가방이 퀼팅 패턴과 만나 1층 백화점 명품 shop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램 스킨, 카프 스킨, 페이턴트... 샤 0 가방을 사기 위해 가방을 만드는 소재를 머릿속으로 라인업했고,

주머니에는 그 가방을 살 수 있는 카드를 소지했으니 화려한 입구를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휠체어를 밀고 입구로 갔다.

"손님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나요?"

"네..."

"왜요?"

그때, 하얀 투피스에 무거운 진주 목걸이, 화려하게 빛나는 주얼리를 치장한 여자가 나를 밀치고 매장에 들어갔다.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내가 보잘것없이 보여서, 수많은 가정을 하고 하얀 투피스 여자를 따라 간 그 직원을 쳐다보았지만,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결국 듣지 못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가방을 사고팔아야 하는 그 매장에서 버려졌다고 느끼는 그날, 아직도 기억나는 클래식이 있다.

1층 매장을 감돌았던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L'estro armonico]은 휠체어 바퀴를 돌려 샤 0 매장을 빠져나오는 나에게 수치심을 씻겨주는 유일한 위로였다.

남아프리카 고원에 위치한 마리츠버그 역은 해발이 높은 지역이라 혹독하게 추웠다.

변호사로 일했던 간디는 일등실 표를 살 수 있고 탈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삼 등실에 타야 하는 차별을 받았고 그때 그 경험이 개혁가의 삶을 살게 했다고 고백했다. 등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추운 대합실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그는 독백했다.

"나는 변호사야. 내 권리도 보호할 수 없다면 누구의 권리도 보호할 수 없어. 그러면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돌아갈까? 그래, 굴욕을 당해도 견디자. 이 고난은 표면적인 거야. 깊게 뿌리내린 인종 편견이라는 업병(業病)의 징후일 뿐이야.. 내게는 힘이 있어. 이 뿌리 깊은 병을 제거할 힘 말이야. 나는 이 힘을 써야 해. 고난에 항거해야 해."

이튿날 총 지배인에게 장문의 전보를 치고 일등실 표를 구한 간디는, 역장의 차별과 비난에 굴하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일등실 칸에 탔다.

샤 0넬 가방을 사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그 직원에게 보란 듯이 복수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차별받은 세상에 항거하기 위함일까?

고가의 샤 0 가방을 살 수 있는 카드 대신에 만 원권 현금을 다발로 들고 찾아가서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 당했던 그 명품 매장 직원에게 현찰 꾸러미를 보여주었다. 어색한 미소 끝에 그는 매장까지 휠체어를 밀어주었던 서툰 복수극은 '똑바로 살기'위한 초석이 되었다.

간디에게 변호사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살아갔던 그 변곡점이 차별당한 마리츠버그역 이라면, 필자에게는 휠체어와 목발로 살아가면서 당했을 수많은 차별과 편견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갈무리가 되어주었다.

살아보니 외모로 비하하든, 보이는 현상으로 비판하든, 떠난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눈물의 포옹을 하게 되는 시기가 있다.

우연한 사건들이 갈무리가 되고, 고난에 항거하며 다시 일어서는 순간마다 어린 시절에 저지른 사소한 잘못까지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쉽게 용인하고 잊었을 사건들을 다시 재해석하고 또 다른 우연을 기대하는 시간을 가질 때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간디와 필자의 사례를 썼을 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고 편견으로 입혀진 평가를 받는다.

사건이 사람을 이끌고 우연이 운명을 결정짓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이때, 정신이 각성이 되어 있지 않으면 덧입혀진 평가에 YES라고 옹호하면서 생각 없이 편승하게 된다.

멈추어야 보이고 시간이 흘러야 아는 진실이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준비해야 한다. 바른 언어로 대응할 준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 때 가면을 벗을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온다. 뜨거운 손을 잡아 줄 필연이 오고, 바른 언어에 바른 화답을 해주는 지혜로운 자가 온다.

그렇다면 고난에 항거하고, 억울함을 풀어 갈 빠른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약한 사람에 대한 공감, 탐욕이라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간디의 자세다.

큰 길은 하늘이 정하고 작은 길은 인간이 정한다고 한다.

작은 길을 정하고 끊임없이 나아간다면 지적 도약을 이루게 되는 위대한 떨림을 경험하게 된다.

작은 길을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하늘이 정해 놓은 큰 길을 마주하게 되는 기적이 온다.

필자는 지금도 그래서,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그 시작점은 간디가 말한 문장에 줄을 쳤을 뿐이다.

"고난은 표면적이다. 항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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