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천상의 이미지를 지상에 안착시키는 작업, 은유(metaphor)
[간호사의 단상] 천상의 이미지를 지상에 안착시키는 작업, 은유(metaphor)
  • 김혜선 인재기자
  • 승인 2021.06.16 1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 비가 열매 맺었네.”

“비가 열매를?”

“응. 저기 봐봐. 전깃줄”

비 오는 날, 전깃줄에 빗방울이 대롱대롱 맺힌 모습을 보고 “비가 열매 맺었네.”라고 말하는 딸아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겨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은유[隱喩, metaphor]라고 한다. 대표적인 표현은 김동명 시인의 시 <내 마음은>에 나오는 ‘내 마음은 호수요’를 들 수 있다. 아이들은 상상력과 창의력 덩어리로 경직된 어른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딸아이는 식물이 아닌 대상에서 열매를 이끌어냈다. 발상의 전환이다.

 

은유는 직유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얼굴이 꽃 같아.’는 직유이며 ‘A는 B와 같다’로 표현된다. 반면 ‘그녀는 태양이다.’는 은유로 ‘A는 B다.’의 형식을 지니고 경계와 틀을 뛰어넘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떠올릴 수 없는 부분에서 예술가들은 특별함을 도출해낸다. 예술 분야에서 창조성은 필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별함 즉 창조성의 근원을 은유(metaphor)라고 했으며 훌륭한 은유일수록 A와 B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정재승씨의 『열두 발자국』에서는 은유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설명되어 있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 이것이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진다. 전두엽과 후두엽이,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창의성은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Think different!

‘다르게 생각하라’는 광고와 해당 상품은 세계를 휩쓸었다. 스티븐 잡스는 ‘제품을 탄생시키는 건 기술이지만, 사람들이 제품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인문학’이라고 했다.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술과 인문학을 연결시키고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제품을 탄생시킨 스티븐 잡스의 원동력은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기술 분야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모든 분야에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왜 창의성과 인문학을 같이 말하는 것일까?

창의성은 정재승씨의 표현처럼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나타나며 이는 평소의 자신의 틀을 깨는 것에서 생성된다. 예측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생각을 내 안에 있는 것만으로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외부에서 오는 재료들과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만나고, 깨지고, 추가되면서 은유와 창의성이 형성된다. 이러한 훈련의 가장 좋은 방법은 인문학을 통해서다. 모든 현상을 직접 마주할 수 없기에 인문학을 통해 과거를 보고 현재와 미래를 유추하고 고민, 공감, 다르게 보기 등을 연습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힘을 빌려 삶을 바라보는 건 뉴턴의 명언처럼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았기 때문에 더 멀리 내다볼 수’있는 지혜다.

 

언컨택트 시대의 확장과 더불어 철옹성 같던 전문지식의 봉인이 해제되고 있다. 이제는 순수한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와의 융합 및 통섭이 중요해졌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자동차 산업과 IT 산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수명연장과 AI로 인해 한 가지 직업으로 정년까지 가는 시대는 사라지고 평생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변화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직업보다는 자신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직업이 바뀌더라도 나의 콘텐츠가 있다면 이를 활용하여 타분야와 융합이 가능하며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도 창의성은 필요조건으로 대두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사랑은 메타포와 더불어 시작한다. 달리 말하면 사랑은 어떤 여자가 그녀의 첫마디로 우리들의 시적 기억 속에 자신을 아로새기는 순간 싹튼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현실과 맞닿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 속에 형상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사랑뿐 아니라 붙잡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개념을 느낄 수 있고 현실화시키기 원한다. 천상의 이미지를 지상에 안착시키고 시간과 공간에 아로새기는 과정은 은유와 더불어 시작된다. 은유를 통과하여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의 세상과 다르다. 사랑과 새로움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간질로 실려와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환자에게 지금 ‘뇌가 놀래서 딸꾹질’하는 거라며 안심시켜주는 신경과 의사선생님, 마음과 생각은 연결되어 있음을 ‘뇌腦는 마음의 위胃’라고 명명하신 장석주님의 글귀,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입을 크게 벌리고 “바람을 마시고 있어. 투명한 맛이야.”라고 말하는 딸과의 대화. 이 모든 은유들이 나를 통과하면서 눈빛을 새롭게 하고 사랑으로 차오르게 한다. 새로운 시각과 나만의 콘텐츠를 원한다면 지금 나의 자리에서, 나의 일에 인문학을 옷 입히고 접목하여 일상의 은유를 늘려가보라. 천상의 이미지가 나를 통과하여 안착하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