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 칼럼] 진짜 희망을 잡는다면 소음 안에서 고요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황정미 칼럼] 진짜 희망을 잡는다면 소음 안에서 고요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황정미 인재기자
  • 승인 2021.06.20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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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멋대로 듣고 멋대로 본다.

들었던 것과 보았던 것을 누군가가 귀에 대고

속삭여준다. 나는 아직도 이 속임수를 믿는다.

속삭임이라서 믿는다.

- i에게. 김소연 시인의 글 중.​

​코로나 시대라고 합니다. 이제는 코로나로 인한 불편이 익숙해지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내면의 소음에 지친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람을 덜 만나고, 혼자 만의 시간을 통해 고요함을 찾고 있는데 왜 마음이 시끄러울까요?​

우리가 다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진흙으로 여성을 만들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 최초의 여성이 탄생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판도라. ‘모든 신으로부터 선물을 다 받은 여자’라는 뜻입니다.​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와 결혼을 해서 살게 되는데 그 집에는 절대로 열면 안 되는 ‘항아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판도라는 날이 갈수록 항아리(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고.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판도라는 항아리 뚜껑을 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항아리 안에 들어있던 슬픔과 고통, 시기와 질투, 가난과 질병 등 온갖 재앙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단 하나. ‘희망’은 그대로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판도라의 상자 속, 희망은 이중적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은 어떤 불행이 닥쳐도 상자 안에 남아있는 희망을 잃지 않으면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고, 동시에 희망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 상자를 닫아 버렸기 때문에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만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판도라의 상자를 비유로 희망을 설명하면 '희망'이라는 개념에만 국한되어 버립니다. 희망의 주체인 '나'에게 집중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코로나 시대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우리는 sns에 편중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 강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실현 가능성이 없는 희망, 헛된 야망이나 남의 꿈을 좇는 허상을 가지게 됩니다. 어렵게 만들어가는 그들만의 결실을 축복하기보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을 꿈꾸고 가질 수 없는 영역을 탐내기도 합니다. 그것이 속삭임으로 올 때, 내면의 목소리가 커질 때, 사람들은 공허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음 안에서 어떻게 고요함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꿈꾸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공허하지 않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즉, 남의 꿈을 좇는 희망이나 바람은 내면의 목소리에 의해 마음이 시끄러워지고 고단해질 뿐입니다.

​희망을 다른 해석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희망은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또 바라는 바를 기대함에 따라 생기는 욕구나 그것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바라는 바 또는 희망의 대상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희망”이라고 번역된 단어들의 히브리어 어근 동사 카와를 찾아봤습니다. 기본 의미는 열렬히 기대하며 “기다리다”입니다. (창 49:18)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나오는 희망의 다른 언어 엘피스를 찾아봤습니다. “좋은 것에 대한 기대”를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는 기대하고 바라는 바가 커서 희망을 품게 되고, 가끔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희망에 편승하여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보며 달콤한 속삭임으로 다가오는 내면의 소음에 지치곤 하는데, 카와 나 엘피스라는 단어의 직역처럼 기대한 것을 '기다리는 인내'로 헛된 야망이 아니라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간다면 희망이 예쁜 소망이 되지 않을까요?

​예쁜 소망이 모이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그 마음이 공명이 되면 그토록 원했던 희망이 보이고 만져지는 실체가 될 수 있습니다.

소음 안에서 고요함을 찾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면의 목소리가 전달하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당신의 궤적으로 품고 가져갈 수 있는 영역입니까? 그렇다면 희망을 '소망'으로 바꿔보세요. '좋은 것에 대한 기대'라는 의미의 '좋은 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를 위한 것이라면 닫힌 판도라의 상자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던 '희망'을 만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나요?

'소망' 같은 '희망'이 있다면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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