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핫한 여름 사색한잔
[간호사의 단상] 핫한 여름 사색한잔
  • 김혜선 인재기자
  • 승인 2021.07.27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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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안  『고사관수도』 (출처 : 구글 이미지 제공 DB)
강희안 『고사관수도』 (출처 : 구글 이미지 제공 DB)

 

이 그림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다. 강희안은 조선의 단종, 세조시기를 살아간 인물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와 이종사촌 관계다. 그림 실력이 매우 뛰어났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강희안은 쉽게 그려주지 않았다. 그림에 눈이 팔려 근본인 ‘덕德’을 깨닫지 못할까 우려해서였다. 그저 고요히 세상을 관찰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는 수단으로 그림을 바라봤고 먼저 성품과 감정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림은 덕을 닦고 정신을 맑게 하는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무심하고 담담하게 물을 바라보는 선비의 표정에 시선이 한참 동안 머무른다. 가로 16cm* 세로 23cm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공간 안에 그려진 선비의 얼굴에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내면이 표현되어 있다. 같이 시를 지으며 읊었던 벗들인 사육신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을 보내야했던 강희안. 어쩌면 그는 이 속세를 떠나 그저 자연과 벗하며 괴로움 없는 세상을 살아가기를 갈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림 속의 선비가 강희안 같고 강희안이 선비와 같은 이 경지. 그림 안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투영시키는 이 수준이 바로 덕에 이른 단계가 아닐까.

 

노자 『도덕경』의 첫구절.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이름이 아니다.‘

 

궁극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단이 필요하지만 궁극에 도달하면 수단은 어느새 사라진다. 강을 건너기 위해 배가 필요하지만 건너간 후에는 필요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도’를 ‘도’라고 명명할 수 있는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 경지다. 같은 의미로 위진남북조 시대의 천재 사상가인 왕필은 주역에 대한 주석을 달면서 ‘득의망상(得意忘象)’이라고 했다. ‘뜻을 얻었으면 궤를 잊어라’는 뜻. 한나라 사람들이 주역의 궤를 이리저리 해석해서 궤 자체를 신비화시키지 말고 궤에 집착하지 말고 그 너머에 있는 본래의 의미를 깨달으라는 의미다.

 

『고사관수도』를 보면 ‘나’와 ‘그림을 그린 이’ 그리고 ‘그림 안의 이’가 하나로 연결된 듯하다. 객관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감정상으로는 하나가 된 듯 오묘한 그것! 숲에는 여러 나무들이 우거져 살고 있다. 나무와 풀잎들 하나하나는 숲을 이루는 요소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개별의 나무들은 희미해진다. 숲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무와 풀잎 하나하나는 필요 요소이지만 숲이라는 커다란 개념에 도달하면 하나하나는 사라진다.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궁극에 이르는 과정이며 궁극에 이르러서는 메임 없이 훨훨 자유롭게 노닐게 된다.

 

꽃이 물을 만나 / 물의 꽃이 되듯 / 물이 꽃을 만나 / 꽃의 물이 되듯//

밤하늘이 별을 만나 / 별의 밤하늘이 되듯 / 별이 밤하늘을 만나 / 밤하늘의 별이 되듯//

내가 당신을 만나 / 당신의 내가 되듯 / 당신이 나를 만나 / 나의 당신이 되듯 //

 

정호승님의 시 「성체조배」.

시를 읽어 가면 궁극의 극치가 무엇인지 조금 알 듯하다. 일상에서의 ‘도’ 그리고 ‘궁극’은 그리 멀지 않다.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그 안에 푹 젖어서 거닐 듯이 말이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그림안의 선비가 되어 한가로이 생각의 숲을 노닐게 해주었다. 내가 선비가 되고 선비가 내가 되어서 말이다. 이 핫한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당신에게 사색 한잔 권한다. 사색의 바다에서 더위를 잊고 깊이 빠져보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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