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흙이었다
나는 원래 흙이었다
  • 양서영 인재기자
  • 승인 2021.09.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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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을 펼쳐놓다
도예가 이선애

가을 장마가 끝난 백로 다음 날, 하늘은 그제야 가을다웠다. 눈부시게 창공은 찬란했다.

운현궁 담벼락을 따라 보랏빛 방아꽃이 가지런하게 피어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졌다. 도예가 이선애님의 전시회가 열리는 인사동 골목까지 보랏빛 방아꽃들이 안녕하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선애 도전<陶展>]

나는 원래 흙이었다

작품 한 점이 있다. 그 아래 한 문장이 있다.

나는 원래 흙이었다

 

간명한 문장이었다. 전시회를 규정하는 어떤 주제도 없다. ‘질그릇을 펼쳐놓다의 뜻을 지닌 <陶展>이 주제라면 주제였다.

 

그녀의 작품들을 여러 번, 찬찬히 바라보다 어떤 공통점을 찾았다. 처음엔 그런 모양이 어떤 의도가 개입된 결과물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면 내 눈엔 불량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불량품이라니!

그녀가 세상에 펼쳐 낸 작품들은 반듯한 도자기가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본 익숙한 장면이 떠올랐다. 스승이 제자의 작품을 가차 없이 깨부수는 장면 말이다. 내 안에 정형화된 관념이 그녀의 작품 앞에서 당황했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휘어지고 터지고 갈라졌기 때문이었다.

 

유독 내 맘을 잡아채고 놓아주지 않는 작품이 있었다. 유백색 항아리였다. 항아리 몸통에 불룩한 흉터가 도드라졌다. 실패작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물었다.

 

Q. 어떤 의도가 있나요?

 

A. 없어요. 그냥 맘이 가는 대로 손이 함께 가준 것 뿐이죠. 때론 손 가는 대로 맘이 뒤따라오기도 하고요.

 

Q. 작품을 만들 때 아무 의도가 없으시다는 말씀인가요?

 

A.. 일부러 흠집을 내는 게 아니에요. 진부한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흙하고 놀아요.

놀다 보면 흙이 가진 성질과 저의 성질이 부딪치기도 하고 공명하기도 해요.

 

Q.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 때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 그렇지 않아요. 처음엔 그랬어요. 제가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으면 조바심을 내고 다시 만들곤 했어요. 그런데 많은 시간을 흙과 놀아보니 이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고 생명이구나 깨달아졌죠. 흙과 내가 분리된 게 아닌 하나였구나. 그냥 알아졌어요.

 

Q. 작가님은 예술과 의도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규정하시나요?

 

A. 예술이라는 단어 안에 기술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어요. ‘예술은 순수하고 의도는 불순하다이런 이분법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무언가를 창조해 낸다는 행위 안엔 이미 어떤 의도가 개입되죠. 그렇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 의도를 고집스럽게 끌고 가진 않아요. 가다 보면 자기 성질대로 휘어지기도 터지기도 뻗대기도 하거든요. 전 그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둬요. ‘예술과 의도는 분리된 개체가 아닌 하나인 거죠.

 

그녀의 작가노트 중 일부분을 옮겨본다.

 

[나는 원래 흙이었다.

많은 시간 동안 흙은 나와 함께

도자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의 작업엔 어떠한 목적도 계획도 없다.

다만, 휘어지고 터지고 갈라지고

그러면서도 자유롭고 제멋대로인

도자기를 만나볼 수 있을 뿐이다.]

 

오래된 한옥을 전시 공간으로 만든 <갤러리 공간35>는 작은 마당을 품고 있었다.

마당 한편에 식물들이 무성했다. 장독대와 함께 어우러진 키 큰 꽃들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내 안에 무언가가 건드려지고 있었다. 그녀가 작품을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말이 그냥 내뱉는 미사여구가 아님을 꽃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느꼈다.

그녀의 작품 특징은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여졌다. 도자기에 문외한인 내 시선엔 실패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말처럼 휘어지고 갈라진 것들이 펼쳐져 있었다.

가만히 그 아이들을 들여다보았다. 터지거나 뚝 떨어져 나간 자리마다 작가의 공력이 보였다. 너는 왜 이렇게 생겼냐고 힐난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허용하며 고요하게 보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녀가 말했다. 완벽한 작품이란 없다고. 따라서 실패작이란 없다고.

완벽이란 말처럼 사람을 목마르게 하는 단어도 없다. 완벽이라는 말은 결핍을 상기시킨다.

사람의 행복이 조건에 의한 것이면 그 행복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과연 완벽을 완벽하게 검증할 기준이 세상에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실패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녀의 작품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얼굴이 됐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땐 독특한 성질머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떨어져 나간 자리는 그대로 존중되었다. 울컥 뜨거움이 올라왔다.

허리를 굽혀 아래에서 위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엔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다.

모양과 색이 오묘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홀린 듯 색감에 빠져들었다.

라꾸(RaKu)소성법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호들갑 떨며 으스댈 필요가 없다. 작가의 말처럼 흙은 보석이고 보석은 흙이다. 모든 작품은 실패가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라고 인식하는 관념만 존재할 뿐, 그 관념은 허상이다.

 

"그녀가 말했다.

한 그루 나무처럼

한 마리 새처럼

단순하게 맑게

흙처럼 살고 싶다고."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가 떠올랐다.

그녀의 작품이 그랬다. 상처를 숨기는 대신 드러내는 쪽을 선택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부정적 에너지를 소멸시킨다.

저항엔 압력이 따르므로 언젠간 폭발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택한 드러냄은 사랑이었다.

입 밖으로 꺼낸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고 했듯 작품을 빚는 과정 중 깨지고 터진 자리는 그녀의 마음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 빛났다.

 

그녀가 불쑥 말을 꺼냈다.

어떤 목적이나 계획은 없지만 서로 암묵적인 룰이 있다고 했다.

너를 살릴 테니 너도 절제해 달라고 부단히 만져주며 돌봐준다고 했다.

 

마지막 관문은 작가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그건 신의 영역이라 했다.

 

작품을 감상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게 나로선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녀가 한 작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이 아이를 보면 마음이 편해져요. 시원해지고요.”

 

그 작품을 보는 내 머릿속에 평사리가 떠올랐다.

속으로 말했다.

넌 내게 평사리야

 

그녀의 제자가 왔다.

이것 저것 염료에 대해 질문하며 조심스럽게 감상을 했다.

그녀에게 결례를 한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작품을 만지며 감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제자에게 말했다.

편하게 만져도 돼요. 도자기도 따뜻한 손길이 필요해요.”

제자가 조심스럽게 작품을 만지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 민망함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원래 흙이었다>

이 문장 안에 함축된 많은 이야기는 관람객의 사유를 통해 해제될 봉인된 메시지가 아닐까라는 물음을 내게 건네며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아침에 보았던 운현궁 담벼락 아래 피어있던 보랏빛 방아꽃이 보고 싶어졌다.

 

  •  도예가 이선애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예과 석사

단국대학교 조형예술학 박사 수료

개인전 9회 (한국, 일본 등)

국제교류전 다수 (일본 중국 미얀마 몽골 그리스 파리 뉴욕 등)

제29회 모란현대미술대전 공예부문 최우수상

제22회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심사위원 역임

상지대학교 생활조형학과 외래교수 역임

현) 단국대학교 도예과 외래교수

     단국대학교 평생교육원 도예과 출강

     Studio : 피앤엘 아트 갤러리 대표 (동탄)

이선애 개인전 / 2021.09.08 ~ 09.14 / 갤러리 공간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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