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그녀는 예뻤다
  • 양서영 인재기자
  • 승인 2021.10.0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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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심는 여인, 조순옥님을 자랑합니다 !!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 천변길엔 걷는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라이딩하는 사람이 속도를 줄이는 어느 한 지점이 있다. 그곳은 약 250미터쯤 되는 꽃길이다작년 봄, 어떤 아주머니가 냇물에서 물을 길어 꽃밭에 물을 주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리곤 잊고 있었다.

얼마 전 동네 지인이 불쑥 말을 꺼냈다.

혹시 천변에 있는 꽃길 알아? 세상에 꽃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그 꽃밭을 혼자 가꾸는 분이 계시더라구. 그런 분은 상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물을 길어 나르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람은 군더더기 없이 기분좋게 불었고 노을은 신비로운 색으로 서쪽하늘을 물들여 놓았다.

산책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천천히 걷는 내 시야에 노랑코스모스 군락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멈추고 웃음을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다.

 맨드라미, 코스모스, 쑥부쟁이, 메꽃, 메리골드, 루드베키아, 기생초, 금계국...손가락을 꼽아가며 꽃의 종류를 세다 그만두었다. 꽃이름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종류가 많기도 했다느려진 발걸음이 어느새 꽃들을 향해 멈춰졌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었다. 노을이 시나브로 지고 하늘은 담청색으로 바뀌었다. 난 이 시간이 좋다가로등이 켜지기 직전, 어둠이 사물의 형체를 지우기 직전, 자연의 빛이 희미하게 머무는 이 시간이 좋다. 옅은 어둠속에서 꽃들은 선연한 빛으로 도드라졌다. 마치 형형색색의 풍등들이 땅으로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천변의 풀들은 짙푸른 청녹색을 띠고 억세게 웃자라 있었다. 저 억센 풀들을 일일이 손으로 뽑고 꽃씨를 뿌리고 물을 길어다 주며 꽃밭을 가꾸었구나 생각하니 아주머니를 만나고 싶었다.

조순옥님

 꽃길을 만든 조순옥님(70)을 만났다. 작은 체구에 소녀의 눈빛을 가진 아름다운 분이셨다. 딸이 살고있는 경주에서 새벽에 올라오셨다고 수줍게 말씀하셨다. 며칠 꽃밭을 돌보지 못했다고 하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연신 허리를 굽혀 풀을 뽑으셨다. 풀을 뽑는 맨손에 시선이 갔다. 고운 얼굴에 비해 손이 거칠었다.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극구 사양하시는 아주머니와 천천히 꽃밭을 걸었다꽃밭을 가꾸게 된 동기가 있냐고 여쭈었다.

그냥 내가 좋아서요.”

 뭔가 드라마틱한 사연을 내심 기대했었나보다. 뜨거운 햇볕아래서 억센 풀들을 뽑고 돌을 고르고 꽃씨를 뿌리고 물을 길어나르는 과정들이 무색할만큼 대답은 담백했다.

손가락은 괜찮으세요?”

  " 아프긴 해요. 그런데 시간이 나면 이곳에 오는 게 습관이 됐어요. 한 뼘만 풀 뽑고 가자 맘먹어도 그게 잘 안 돼요.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이 못 가게 해요."

 아주머니는 식당일을 하셨는데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하셨다. 출근하기 전 새벽에 들러 잡초를 뽑고 퇴근하는 길에 들러 물을 길어다주며 조금씩 일궈 간 세월이 4년이 됐다는 말씀에 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주머니가 웃으셨다.

물을 다 주고 나면 몇 시간은 걸려요.”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를 이곳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식당일을 하시면서 꽃밭을 가꾸셨다는 게 놀라워 재차 여쭈었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제가 꽃을 좋아해서요.'  일미터도 가꾸기 힘든 딱딱한 땅을 달랑 호미 한 자루로 250 미터를 일구셨다는게 그저 놀라웠다. 여름을 보내며 호미 몇 자루가 닳았다는 말씀엔 탄식이 나왔다키 작은 꽃들과 어른 허리를 훌쩍 넘는 키 큰 꽃들이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아주머니는 동네 구석구석 버려진 공터나 학교 담벼락 아래에 꽃을 심으셨다

아!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거구나. 시간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무언가를 못한다는 건 진짜 좋아하지 않거나 조금 좋아하는 거구나. 좋으면 그냥 하게 되는 거구나.'

 젊은 연인이 꽃밭을 향해 몸을 나란히 하고 바라보며 웃는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아가씨가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중년의 여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꽃밭에 머문다. 웃음소리가 퍼지고 감탄사가 터진다. 모두들 그렇게 꽃길을 걸어간다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은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자연이 그렇다. 공기, , ,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 아주머니가 사람들에게 준 즐거움의 값은 얼마일까수줍어하시던 아주머니는 시간이 지나자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건데 사람들이 별의별 말들을 던지고 간다고 했다.

 어디에서 돈을 받고 하는거냐? 골다공증 걸린다. 더운 여름에 무슨 짓이냐, 열무를 심으면 김치라도 해 먹지 돈도 안 되는 쓰잘데기 없는 꽃들은 뭐하러 심느냐,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노인인가보다...등 갖은 소리를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맘이 힘들기도 했다며 웃으셨다.

 “ 어떤 분들은 호미와 물 조리개를 가져가기도 하세요. 그런 건 또 사면 되는데 구하기 어려운 꽃을 심어서 꽃을 피웠는데 그 꽃을 통째로 캐서 가져가는 분도 계세요. 그게 젤 속이 상해요.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시원한 음료수 사다 주시는 분, 꽃씨 사서 두고 가시는 분,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아주머니의 눈빛이 반짝였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때의 눈빛이었다.

 “ 중학생쯤 되는 남학생 세 명이 지나가며 하는 말을 들었어요. ‘ , 이 꽃들 이쁘지? 너희 동네엔 이렇게 이쁜 꽃밭 없지? 우리 동네엔 있다’ ‘그래 진짜 이쁘다라며 지나가는데 내 맘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 타샤 튜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주머니의 거친 손을 보며 타샤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공터에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그곳에 꽃씨를 뿌렸다. 꽃이 피어나는 자리에 사람들은 쓰레기를 덜 버리더라고 말씀하셨다. 4년 동안 동네 구석구석 꽃을 심었다. 사람들의 미심쩍은 시선에도, 별난 사람이라는 호기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밭을 넓혀가는 일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추석 연휴 동안 저녁이면 아주머니의 꽃밭을 찾아갔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이런거구나. 난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가? 기꺼이 맨손 맨발을 내어 줄 수 있는가? 내 삶에 어떤 씨앗을 심고 있는가?

 아주머니는 별 거 아닌 일로 알려지는 게 부끄럽다고 하셨다.

한사람이라도 꽃길을 걸으며 즐거워했다면, 아름다운 순간을 추억으로 남기려 사진을 찍게 했다면 그건 별일을 하고도 남은거다.

남학생이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듯 나도 월피동 주민의 한사람으로서 아주머니를 세상에 자랑하고 싶다.

“ 조순옥 아주머님, 고맙습니다." 

사진: 박준영

*타샤튜더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작가이자 화가이다. 그녀는 40여 년에 걸쳐 맨발로 정원을 가꾸며 살다 갔다.

사진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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