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카페교회 이덕주 목사,"지금은 마을목회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오병이어 카페교회 이덕주 목사,"지금은 마을목회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 김변호 기자
  • 승인 2022.03.11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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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교회이고 교회가 마을이다.
카페 어린왕자에서 이덕주 목사와 위지영 사모.
카페 어린왕자에서 이덕주 목사와 위지영 사모.

목회상황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중소형 교회 목회자들이 생계문제와 소명문제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심각한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에 서울 서초구의 한 교회를 방문하고 큰 도전과 함께 가슴 아픈 현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목사님의 20대 큰 아들은 갑자기 뇌종양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거실에 산소 호흡기를 낀채 3년 동안 누워있었고, 목사님은 지하실 30평의 작은 교회에서 노인이 대부분인 성도들과 함께 노숙자 무료식사를 매주하고 운영하고 있었다. 노숙자의 무료식사 사역의 재정 대부분은 80세가 넘은 권사님 두분이 매달 나오는 경로연금을 헌금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지난 달 기도 중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더니 교회는 보증금을 모두 소진하고 집기들은 중고로 정리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낀 아들을 여전히 거실에 두고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생계 때문에 사모님과 목사님은 나가서 일을 하고 싶어도 아들을 교대로 24시간 돌봐야 하기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생계가 어려워 생각 끝에 핫도그를 만들어 인터넷에 팔아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광고비를 주고 나니 남는 것이 없어서 포기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냐고 했더니 목사님은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인도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살고 있는 집의 월세는 매월 보증금에서 삭감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장로님들과 상의하여 우선 생활비를 보내드렸다.

이 목사님의 상황을 보면서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삶에 있어서 생계문제가 생존문제가 되어 목회상황이 생각이외로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을 음악회 모습.
마을 음악회 모습.

얼마 전에 친구 목사님이 소개해준 아산 월랑저수지 근처에 있는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오병이어교회 이덕주 목사님(44세)을 만났다. 이 목사님은 어렵게 시작한 목회상황에서도 지역에서 선한 영향을 끼치고 가정 생계와 목회적 사명까지 잘 감당해가고 있었다. 친구 목사가 이야기 해준 것을 생각하면서 오병이어교회를 방문했을 때 교회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카페교회였다. 방문한 날 카페교회에는 손님들이 제법 가득차 있었다.

현재 목사님은 지역에서 체험농장 어린왕자, 카페 어린왕자, 농업회사법인 오오헬스푸드(주) 등을 운영하고 있었고, 마을 도서관 관장과 마을 총무로 마을을 섬기면서 마을의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해 왔었다. 농림부에서 실시하는 마을 만들기를 기획해서 사업비를 지원받아 마을 살리기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그동안 마을 살리기를 위해서 펼친 사업들도 꽤 많았다. 정월대보름행사, 5월 어버이날축제, 초복행사, 재능기부 마을음악회, 마을극장, 이미용 봉사, 치매예방을 위한 목공체험, 치매예방을 위한 원예체험, 나만의 특색있는 문패만들기, 매월 목욕탕 모시고 가기 등을 하며 마을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앞장서 왔었다.

지역 민심을 얻고 목회영역을 넓혀가며 전도의 접촉점을 삼아 복음증거를 목표로 힘써오던 터에 코로나19 감염사태가 생기면서 모든 것이 중단 되었다. 이에 교회의 목회 활동이 중단되고 갈수록 어려워 5명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까지 왔다.

이때 이 목사님은 마을회관과 마을도서관까지 패쇄되고 교회예배까지 비대면 예배로 전환되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을 보고 이대로 가다가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사역에 대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도 가운데 카페교회로 전환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일 수 없지만, 카페는 언제든지 5인 이상만 아니면 모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보면서 카페교회에 마음이 쏠렸다.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셔서 어렵게 보증금을 마련하여 월랑저수지 앞에 작년 8월에 카페교회를 열게 되었다. 이때 여러 사람들이 우려스런 말들을 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일 수 없는데 카페를 열어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고 우려스런 말을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카페는 잘되었고 행복하게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목사님은 “카페에 오는 모든 손님들을 우리교회 성도들처럼 섬기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카페를 청소하며 커피를 내리고, 붕어빵을 구우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에 그들을 감싸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내린 커피와 붕어빵을 먹는 자들마다 예수님 믿고, 행복해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라고 했다.

오병이어 카페교회엔 특별한 메뉴가 있었다. 사영리 붕어빵이 그것이다. 사영리 붕어빵에 네가지 문자가(♥×⍏?)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생각없이 붕어방을 주문했다가 먹으면서 궁금해서 이 목사님에게 질문하게 된다. 이때 목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 설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이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전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카페를 운영하면서 전도와 결신 그리고 기성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의 신앙상담 등 많은 열매들이 있었다.

어린이들 체험농장 모습.
어린이들 체험농장 모습.

목사가 카페를 운영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부담을 느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 목사님은 “카페에 오는 고객 중 40%는 이제 제가 목사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편하게 이용하고 있고, 다른 교회를 다니는 분들도 상담을 요청하기도 하고 본 교회에 잘 출석하도록 권면하고 기도해주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카페에 오셔서 평안함을 느끼고 복음을 듣고 행복해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어떻게 카페에 붕어빵 메뉴를 도입할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카페 문턱을 낮추고 싶었습니다. 카페도 대부분이 2-3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이용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붕어빵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카페는 어린이 손님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이용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이 목사님이 카페교회까지 생각하게 된데는 코로나 영향도 있었지만 남다른 아픈 사연이 있었다. 원래는 용인에서 사역을 하다가 아이들 홈스쿨링 때문에 아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때 아파트 거실에서 교회를 개척해서 어린이전도협회 사역으로 부흥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래층에서 민원을 제기해서 아파트에서 쫒겨나 결국 음봉면 시골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다. 맨 처음 예배드린 곳이 안동김씨 종중에서 일 년에 한번 시제 지내려고 만들어놓은 집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집 앞 7평 컨테이너에서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감사하게도 8가정이 출석하면서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모이자 사역이 쉽지 않았다. 3개월간 기도하면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가정목회로 전환했다. 마을을 집중적으로 섬기면서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는 시간은 마을의 어르신들을 섬기는 사역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때 이 목사님은 교회론에 대해서 새롭게 정립하는 시간을 가지고 ‘교회는 건물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인격’이라는 개념으로 건물에 한정하지 말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삶이 빠진 신앙이나, 삶이 빠진 교육은 거짓이다. 신앙은 삶이다.’는 생각으로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내가 교회이고, 그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카페교회를 시작하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편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카페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페 어린왕자에서 이 목사와 가족.
카페 어린왕자에서 이 목사와 가족.

이 목사님이 그동안 마을을 교회되게 하기 위해서 나름 철학을 세웠는데 ‘나와 우리 가정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하자.’는 철학을 가지고 마을을 섬겨왔다. 이런 마음으로 마을 섬기다보니 많은 오해와 구설수에 올라 마음 상하는 일도 많았다. 마을 총무 임원을 거쳐 도서관을 만들어 관장까지 하게 되었고 모든 어르신들이 좋아하고 신임하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어르신들이 마을이장을 하라고 추천하여 최연소 마을이장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이장을 연임하려는 측에서 온갖 구설수를 만들어 냈다. “땅 한평도 없는 놈이 집 한 평도 없는 놈이 이장을 하면, 어떻게 해, 야밤 도주라도 하면 어떻게 해, 외지에서 온 놈들 때문에 마을이 시끄럽다’며 ‘죽여버린다.’” 등 온갖 이야기를 퍼뜨려 힘든 때도 있었다.

이 목사님에게 어떻게 그런 오해 속에서도 견디고 마을목회를 할수 있었느냐고 했더니 “하나님은 나의 진정성을 알고 계시기에 기도하면서 인내 해왔습니다. 마을목회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해와 헌신 그리고 나눔 이것들의 철학 없이는 마을목회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마을 리더교육과 농산업 교육을 500시간 이상을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이 목사님은 “현재 미자립 교회는 이제 코로나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손놓고, 코로나가 지나가기만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도와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사도바울은 천막짓는 일을 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 목회자들도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들이 각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서 그곳에서 영혼들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페에 있다 보면, 목회자 자녀들, 장로님, 권사님 자녀들, 예전에 학생회 회장을 했었다는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도 안나가고 예배도 안드립니다. 이제는 현장으로 목회자들이 나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됩니다.”라고 했다.

마을도서관 운영.
마을도서관 운영.

또한 “목회자가 이중직 자비량해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첫째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이고, 두번째는 사역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많은 가정들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중에 목회자들 가정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생계’ 때문입니다. 가정의 생계를 사역 다음으로 뒤로 미루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첫 번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카페어린왕자를 통해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고 있습니다. ‘일이 사역이고, 사역이 일입니다’. 일과 사역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그 현장이 사역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매일 카페를 청소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분들이 저들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저들을 감싸주시고, 저들이 마시는 커피 한잔을 통해서 이곳에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세요, 제가 굽는 붕어빵을 통해서 저들이 복음을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하루하루 카페에서 사업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앞으로 이 목사님은 자비량성교센터를 만들려는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 자비량선교센터를 만들어 자비량을 꿈꾸는 목회자나 선교사님들에게 커피기술, 붕어빵기술, 목공기술, 농사기술, 유통노하우 등을 무료로 가르쳐서 선교지나 삶의 현장으로 파송하는 꿈을 꾸며 기도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이 함께 숙식하면서 쉬기도 하면서 기술도 배워 국내는 문론 세계 선교지까지 나아가도록 돕는 센터가 되기를 꿈구고 있었다.

목사님이 손수 구워준 붕어빵과 커피는 그 어느 곳에서 먹는 것보다도 맛있고 인터뷰 내내 열정과 확신있는 사역 이야기를 들으며 커피를 파는 카페가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과 같은 은혜가 가득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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