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금산교회, 머슴 출신 목사와 지주 출신 장로가 보여준 동역의 롤 모델
김제 금산교회, 머슴 출신 목사와 지주 출신 장로가 보여준 동역의 롤 모델
  • 김변호 기자
  • 승인 2022.03.16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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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에 동역의 참 모습 보여준 116년 역사 김제 금산교회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교회 전경.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교회 전경.

“김OO와 김OO모친은 가정불화에 관하여 권면하고, 김OO댁 김OO은 부모 불효와 주일 범하므로 회개할 동안 성찬 불참케 하다. 김OO는 주일 범하므로 권면하고, 이OO은 도박한 일로 출교하고, 박OO는 귀신 공경하므로 출교하고, 김OO는 도박한 일로 학습제명하고, 조OO는 신행을 심사키 위하여 호출하기로 가결하다”

위 내용은 ㄱ역자교회로 유명한 올해 116년 역사를 가진 김제 금산교회 1921년 10월 1일 제17회 당회록에 기록된 결의 내용이다. 당시 금산교회 당회가 하나님이 세워준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얼마나 본을 보이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당회원들이 하나님앞에서 바르게 살지 않고서는 이런 결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총신대학교 신대원에서 교회사를 배울 때에 교수님으로부터 김제 금산교회의 머슴 마부 출신 목사(이자익 목사)와 지주 출신 장로(조덕삼 장로)가 보여준 섬김과 헌신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도가 된 이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성경적 삶을 실제로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되어 이자익 목사님과 조덕삼 장로님의 이야기는 한국교회의 소중한 영적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전해져 내려오는 한국교회사로 듣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귀한 신앙고백이기에 좀더 자세히 듣고 많은 분들이 현장을 찾아 식어진 은혜를 회복하여 교회를 교회되게 섬기고 세우는 일에 동역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사진 왼쪽부터 이자익 목사,조덕삼 장로,최의덕(데이트)선교사.
사진 왼쪽부터 이자익 목사,조덕삼 장로,최의덕(데이트)선교사.

최근 필자는 좀더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김제 금산교회를 찾아 담임이신 김종원 목사님을 만나 금산교회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목사님에게 금산교회 설립에 대해 묻자 “금산교회의 설립은 데이트(L.B.Tate. 최의덕)선교사와 조덕삼 장로와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데이트 선교사는 전주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옛날 김제군 금산리 용화마을은 전주로 가는 길목과 금산사 절간으로 가는 길목, 정읍과 김제읍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덕삼은 지역에서 최고 부자로 마방을 운영했고 대대로 유교를 믿는 보수적인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방 손님인 데이트 선교사에게 접근하여 ‘당신은 평안히 살 수있는 당신네 나라를 두고 여기까지 온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음에 데이트 선교사는 ‘복음을 가진 자로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고 소개합니다. 그러자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 무엇인가요?’라는 말에 데이트 선교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 급기야 조덕삼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후 조덕삼의 사랑채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여 지금의 금산교회(옛 이름 두정리교회)가 시작되었고, 1905년 10월 11일 조덕삼, 이자익, 박화서가 최초 학습교인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진 조덕삼과 이자익의 장로 피택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1906년 6월 30일 데이트 선교사는 조덕삼, 이자익, 박화서를 최초 집사로 임명합니다. 이후1907년 1월 새해에 조덕삼 집사와 이자익 집사는 영수로 임명됩니다. 당시 영수는 목사와 장로가 세워질 때까지 교회 행정과 살림을 도맡아 하는 중요한 직분이었습니다. 1907년 6월 20일 제1회 독노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한국인 최초 목사 7명(길선주,방기창,서경조,송인서,이기풍,양전백,한석진)이 안수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금산교회 장로 2명 청원도 허락을 받게 되어 공동의회를 거쳐 장로투표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때 아쉽게도 모두가 조덕삼 영수가 당연히 장로가 될 줄 알았는데 떨어지고 이자익 영수가 선출됩니다. 이자익은 당시 조덕삼 영수의 머슴 마부이고 나이도 12살이나 아래였습니다. 이때 지주 조덕삼 영수는 발언권을 얻어 앞에 나와 성도들에게 인사하고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라고 인사하며 축복했습니다. 이후 조덕삼 영수도 장로가 되고 이자익 장로는 은혜 받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조덕삼 장로는 신학생 이자익 장로를 열심히 도와 학업을 마치도록 도왔으며 이후 목사 안수를 받자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머슴 마부 출신 담임목사를 충성되이 헌신하며 섬겼습니다. 이후 이자익 목사는 교회 앞에 겸손하였고, 복음에 사로잡혀 한국교회에 크게 쓰임받았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에서 50여년을 사역하였고, 총회장을 세 번씩이나 역임했습니다”고 했다.

김종원목사(오른쪽)와공균장로
김종원목사(오른쪽)와공균장로

교회가 직분자를 뽑기 위한 투표를 한 후에는 종종 후유증을 앓는다. 투표에 임했던 분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고 봉사와 헌신의 동력을 잃고 한동안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금산교회의 지주 출신 조덕삼 장로님과 마부 출신 이자익 목사님의 겸손은 한국교회에 큰 울림과 도전이 되고 있다.

김 목사님은 “지주였던 조덕삼 장로님은 사회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자로 여기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의 삶을 산 자로서 귀감이 됩니다. 조덕삼 장로님은 이자익 목사님보다 연장자이고 사회적 지위도 높으나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와 가치를 더욱 귀히 여겨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쫓아 종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신앙을 보였습니다. 이런 장로님의 섬김 때문에 이자익 목사님이 한국교회를 위해 크게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고 했다.

김 목사님에게 금산교회의 앞으로의 사역 비전을 물었더니 “교회가 위치한 김제 금산면은 수많은 종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입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종교 테마파크’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아주 특수한 곳입니다. 영적 싸움이 극심한 지역입니다.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영적 싸움의 최전선이 아닌가 생각되는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과 복음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그리스도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향기로 쓰여지는 교회를 이루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금산교회 종탑
금산교회 종탑

금산교회는 한국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들이 단체로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서울 모 교회에서 주일예배 설교 중에 담임목사님께서 조덕삼 장로님과 이자익 목사님의 이야기를 설교예화로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한 집사님 부부가 은혜를 받고 다음날 월요일에 금산교회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 부부는 김종원 목사님으로부터 금산교회 설립과 조덕삼 장로님과 이자익 목사님의 아름다운 동역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고 연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도 금산교회는 곳곳에서 방문자들이 교회를 탐방하고 은혜받고 돌아간다.

필자는 금산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지키고 순종하려고 몸부림쳤던 것을 보면서 한없이 부끄럽고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필자 역시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로서 당회를 구성하고 성도들을 섬기고 있어 교회는 어떻게 세워져 가는가에 대한 모델을 본 같아 희망이 생겼다. 금산교회가 물려준 귀한 선배들의 신앙을 잘 계승해서 아름답고 은혜가 넘치는 한국교회로 세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교회탐방 문의 063-548-4055)

금산교회 역사전시관
금산교회 역사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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