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는 언제 사라졌을까
검투사는 언제 사라졌을까
  • 조문형
  • 승인 2015.11.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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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하면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떠오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황제의 아들이 황제로서의 그릇이 아니라는 걸 판단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막시무스에게 그 권한을 넘기려 하지만 아들인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막시무스의 여덟살 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아내를 유린한 다음 잔인하게 불에 태워 죽이지요. 장군이었던 막시무스는 노예로 전락했다가 글래디에이터로 불리는 검투사가 되어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음을 맞게 되는 파라 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마침내 로마의 원형극장인 콜로세움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빼앗은 코모두스와 마지막 목숨을 건 한판을 벌이게 됩니다. 

 

​그런데 마치 게임을 하듯 남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 이런 검투사의 모습이 언제 사라졌을까요.

로마 시대 검투 경기는 수도 로마뿐만 아니라, 로마 공화정과 제정에 걸쳐 제국 전역에서 실시되어졌는데, 서기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검투 경기를 금지시키는 법령을 통과시켰으나, 실제로는 별다른 효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그리스도인이었던 델리마쿠스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검투사를 보면서 열광하는 로마시민들 앞으로 걸어나가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이 잔혹한 경기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미 피를 보고 열광하는 관중은 델리마쿠스의 이런 외침도 경기에 흥을 돋우기 위해 마련한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면서 야유를 보내고 그 놈까지 죽이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상대 검투사를 죽이고 더욱 의기양양한 검투사는 델리마쿠스까지 찌르려고 다가오는 순간 그는 다시 한번 외쳤습니다.

“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니 이 잔혹한 경기는 이제 중단되어라”

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검투사는 그의 몸을 찔렀습니다. 바로 그 직후 그렇게 열광하던 광중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원형경기장을 떠났고 이 일을 계기로 로마에서 검투경기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살인을 금기시하는 기독교가 계속 확장되면서 검투사를 상품으로 여기던 상인들의 수입도 계속 감소하여, 마침내 399년 호노리우스가 제정한 검투기 금지령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알려진 로마 시내의 검투 경기는 404년에, 440년에는 로마 제국의 기록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검투사.jpg

 사진설명 :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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