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글로벌스쿨 교육칼럼(13)] 지리산 둘레길 도보여행-배움은 학교 밖에서 더 흥미로운 거야!
[등대글로벌스쿨 교육칼럼(13)] 지리산 둘레길 도보여행-배움은 학교 밖에서 더 흥미로운 거야!
  • 김변호 기자
  • 승인 2019.05.14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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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여정 속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에너지들은 절대로 교실 안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

햇살이 따뜻하고 온갖 식물들이 땅을 밀치고 올라오던 지난 4월 중순,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지리산 둘레길로 도보 여행을 다녀왔다. 걷는 동안 햇살이 따가웠던 날도 있었고,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도, 비가 내린 날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자연의 섭리를 경험하면서 학생들은 4박 5일 동안 약 80km 걸었다. 가기 전부터 다리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입버릇처럼 외쳤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모두 이 일정을 함께하며 즐거웠던 지리산 추억을 마음에 간직한 채 도보여행을 잘 마무리했다.

지리산 사전 모임은 약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최고 학년인 12학년을 조장으로 하여 다양한 학년이 섞인 조를 편성했다. 이들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 조이름도 정하고, 체력 향상을 위한 훈련도 하면서 도보여행을 준비했다. 도보여행에 시큰둥했던 학생들도 본격적으로 조별모임이 시작되고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면서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드러내었다. 조장들의 역량에 따라 체력 운동을 하거나, 점심시간 모임을 갖는 등 학생은 주도적으로 이 여행을 안팎으로 준비했었다.

도보여행을 출발할 때, 학생들은 약간의 유쾌한 흥분 상태로 기분이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첫날 걷기를 시작하면서는 콧노래도 나왔고, 즐거운 수다와 함께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덤으로 쏟아졌다. 그런데 그 기분 좋은 흥분의 기운은 둘째날이 되자 바람처럼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은 적막과 함께 들려오는 힘겨운 숨소리들 뿐이었다. 학생들이 남은 일정들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때 필자는 학생들의 다른 에너지들을 발견했다.

학생들의 지친 모습들이 지속되는 것에 걱정이 앞설 무렵, 합창 수업 때 배운 노래를 한 학생이 나직한 음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흙과 나뭇가지를 밟으며 나는 자연의 소리 위에 더해진 그 목소리에 잠시 황홀함을 느낄 무렵, 다른 파트의 목소리들이 한 명, 두 명 더해지더니 온전한 하나의 화음으로 천상의 소리가 만들어 졌다. 주위는 온통 10미터 가까운 나무들 뿐이고, 오솔길을 따라 들리는 자연의 소리 위에 학생들의 맑은 목소리가 더해지자, 여기가 지금 어디인지를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하모니가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걸으면서 힘들었던 몸이 감각적으로 무뎌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하나, 둘 지친 모습을 보이자 조장 친구들이 힘들어 하는 학생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모습이 여기 저기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조장들은 고등학생 친구들과는 친하지만, 어린 6학년들과는 평소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교류가 별로 없어서 친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도보를 시작하고 며칠 되지 않아서 힘들다 어쩐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어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린 학생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장 친구들이 나서서 그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고맙다는 말도 채 나오지 않을 만큼 지친 6학년 친구들의 얼굴에는 감사의 표정이 가득했고, 묵묵히 가방을 들어주는 조장학생들의 얼굴에는 인자한 표정이 넘쳐났다. 굳이 군더더기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들 위에 한 가지 더 기억에 남은 것은 선후배간 오고 간 많은 이야기들이었다. 힘든 시간들을 며칠 보내고 나니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연예인 이야기들을 지나서 이제 그들은 학교 생활에 대해, 친구관계에 대해, 진로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선배로서 조언과 함께 응원하는 이야기들도 들리고, 잘 몰랐던 서로의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이야기들도 들렸다. 그렇게 그들은 4박 5일의 시간을 지내면서 타인에 대해 알아가고 관심을 가지며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었다.

학생들이 이번 도보여행을 어떻게 느꼈을지 필자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힘든 여정 속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에너지들은 절대로 교실 안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한 학생이 도보하면서 필자에게 이야기 한 것이 있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이나 체험학습을 왜 다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리산을 오고 나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교실 안에서 배우는 교육도 중요하다. 그러나 교실 밖에서 배우는 것들은 그보다 더 광범위하고 깊은 의미가 있으며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단언컨대, 이번 지리산 여정은 학생들의 삶을 한 단계 더 성숙하도록 만들었다. 체력도, 자기관리도, 인간관계와 섬김도.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더 비상할 학생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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