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어준 황정미 작가, "덜 힘든 사람이 더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 안아주면 돼요"
[인터뷰]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어준 황정미 작가, "덜 힘든 사람이 더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 안아주면 돼요"
  • 최지연 인재기자
  • 승인 2021.01.27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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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가 ‘조금 짧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한 ‘길고 긴 동행, 그 놀라운 기적의 기록
-선생님, 엄마, 상담사, 그리고 저자 황정미 작가님과의 화상 인터뷰
-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하든, 나는 네가 옳다」 저자 황정미

오늘은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황정미 작가님과 화상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황정미 작가
황정미 작가

 

Q. 작가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TOP NEWS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몸이 아픈 사람은 의술로 나을 수 있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은 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처방임을 알기에 아이들과 24시간 동고동락하며 나누었던 기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를 쓴 황정미 작가입니다.
오늘은 인터뷰를 통해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영광입니다.

 
Q. 책을 읽어보니 아이들을 숙식을 함께하며 가르치셨다고요. 정말 특별한 방식인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저는 스무 살부터 과외를 시작했었어요. 장애인으로 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직업군은 한정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과외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한 번도 놓지 않고 하게 되었고, 오래 하다 보니 공부방 규모가 커졌어요. 그러다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나니 등수가 낮은 아이들, 사춘기를 호되게 앓고 있는 아이들,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이 왔어요. 그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까 사춘기가 끝나기도 하고, 방황하던 아이들의 방황이 끝나기도 했어요. 드라마틱한 상황들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제가 운영하는 공부방의 지역보다 조금은 멀리 사는 지역에서도 과외를 받으러 오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거리가 먼 아이들에게 그냥 보내기 아쉬우니 “밥 먹고 가라.”, 시험기간에 늦어지면 “자고 가라.” 그런 일상이 제 마음속에서 ‘아이들에게 마음의 공간을 주자.’ 하며 한 명 두 명 재우게 된 것이 숙식 과외 시작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Q. 시험 기간이라는 특별한 상황으로 시작하셨다가 매일 먹이고 재우고 공부시키는 정말 엄마 같은 선생님이셨네요. 숙식 과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A. 하루 이틀 시험 기간에만 자고 가던 아이들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7년까지 함께 살았었어요. 계기는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저에게 털어놓고, 그 비밀 이야기를 지켜주다 보니 신뢰도가 쌓이고, 상담을 통해서 학교와 가정에 일어나는 아픈 사연을 해결해 주다보니 “선생님과 함께 살고 싶어요.”라는 고백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장난으로 받아들였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어느 날 야외수업을 하는데 진지하게 말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의 상황을 뿌리칠 수만은 없겠더라고요. 그렇게 ‘아, 함께 살아야겠다.’하는 시점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말하는 아픈 마음의 수준이 상상 그 이상이었어요. 집에서 공부방을 다닐 때 불안해하던 모습이 저와 함께 지내면서 안정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렇게 한 명을 재웠는데, 그 아이를 보고 다른 아이들도 또 이야기가 나오게 됐어요. 시험 기간엔 30명 정도, 평상시에는 7명 정도가 저희 집에서 함께 생활을 했어요.


Q. 무엇보다 몸이 불편하신데,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동고동락하시는 일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A.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웃음) 체력적으로 우선 안 될 것 같아요. 상황과 때에 맞게 제게 힘을 주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정말 그때는 그에 맞는 힘과 열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는 한 명의 시작점을 보고 많은 친구들이 손을 내밀 때 열정적으로 건강한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도와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당시 친정엄마가 저와 함께 지내시면서 저를 케어해주셨거든요. 친정엄마가 예전에 식당을 크게 하셨어서 많은 사람의 식사를 해 주실 수 있었어요. 엄마의 도움이 정말 컸어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의 방에 무릎으로 기어가서 인사를 하고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기어가서 밥을 차리고 하는 걸 보며, 오히려 장애인 선생님의 그런 모습에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혈액 암을 앓게 되신 엄마가 공동체를 위해 10첩 반상을 차려주시며, 매일매일 청소를 해주셨어요. 그런 엄마를 보면서 힘을 냈었어요.


Q. 마음이 아픈 친구들을 품어주며, 성적을 올리는 것을 병행하시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아이들 케어는 어떻게 하셨었나요?

A. 저는 하루 일지에 맞게 가르치고 안아주는 일만 했습니다.
물론, 수업이 끝난 후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수험생에게는 수능을 위해 하루 일과를 시험에 맞춰 기상시간, 식사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도 시뮬레이션 했고요.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기록하고, 아날로그 식으로 성적표를 노트에 붙여가며 성적 향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록했습니다. 성적은 쉽게 올릴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성적을 유지하기에는 마음의 요동이 많았습니다. 예상하기 힘든 변수는 친구와의 갈등이나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 부모님의 외도 등입니다.
제2의 엄마로 아이들과 비밀을 공유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상담도 하다 보니, 너무 많은 비밀을 알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한 인간, 한 여자의 모습으로 울기도 했습니다.

 

Q. 이미 너무나 훌륭히 아이들을 케어하시고, 가르치시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까지도 하고 계셨는데 대학원을 진학하시며 상담학 전공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제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하율’이 때문입니다. 하율이는 에니어그램 중 5번 유형이에요. 지적 욕구가 강한 머리형입니다. 책을 좋아하던 하율이는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친구랑 놀지 않고 책만 봤어요.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야외수업을 하는 날, 그 친구가 제게 ‘자살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날 모든 수업을 미루고 상담을 했습니다.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하율이는 친구나 부모의 눈에는 그저 건조한 아이였습니다. 왜곡과 의도 없이 책의 명언을 외워서 대들었던 당찬 아이였는데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니 그날부터 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아이의 마음을 읽고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어렵다고 표현하는 아이를 위해 더 깊게 심리 상담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47세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고 에니어그램 자격증도 다시 땄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책을 출간하게 되었고, 지금은 상담사로 살고 있어요.


Q. 책을 쓰시기로 결단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사실, 아이들의 이야기가 제 이야기입니다. 장애인으로 만들어지고, 아픔이 많은 과거가 결핍이 되다 보니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이곤 했습니다. 너무 쉽게 마음을 주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일상이 지쳐갈 때쯤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책 출간 제의가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책 쓰기의 동기였는데 과거의 제 이야기가 결국 아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기록해 두었던 자료가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중이라 쉽게 쓸 수 있었습니다.


Q. 책을 쓰고 계실 때 그리고 책이 나온 이후 책 속 주인공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성공사례라고 하죠. 등급이 잘 나온 사례나 스스로 삶이 행복하다고 표현했던 아이들은 쓰기 전에 이미 실명으로 써도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몇 명 아이들 이야기는 가명으로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읽어도 된다는 각오로 썼습니다. 책에 쓴 대로 한 명의 아이는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해온 삶을 지켜본 분들이라 책을 읽고 아이들 이야기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살아온 이야기에 놀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진짜 감정을 토로한 책이라 제대로 읽어주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상담사로 살아가는 지금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사례가 책 속의 아이들입니다. 게임을 좋아했던 아이는 코로나 시대, 집콕 생활을 하면서 다시 게임에 몰두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지혜가 있는 아이라서 곧 공부에 매진할 거라는 것을 압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관점과 작가님만의 표현법을 더하여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희망 메시지를 한마디 전해주세요.

A. 저는 지금, 상담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 큰 어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성장한 어른이라고 해도 제대로 내면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애도의 시기를 갖지 않는다면 ‘어른 아이’입니다.
저는 그렇게 눈물을 참고 슬픔을 억압하고 있는 어른들을 안아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라고 하죠.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변했습니다. 마음은 더 가라앉고 우울감은 우울증으로 변할 때, 저는 말했습니다.
“마음을 똑바로, 제대로 보고 표현을 명쾌하고 유쾌하게 하자.”
우울한 감정, 있을 수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힘들 수 있습니다.
덜 힘든 사람이 더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 안아주면 됩니다. 똑같이 무너지고 똑같이 쓰러지면 안 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의 울림이 공명(共鳴) 하는 마음이 된다면 한번 잡아 준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공명(共鳴) 하는 마음은 반드시 있습니다.
잡은 손, 놓지 맙시다.
그리고 함께 웃을 그날, 먼저 잡아준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손을 내밉시다.

그렇게 함께,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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