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 집은 여기야
얘들아, 너희 집은 여기야
  • 양서영 인재기자
  • 승인 2021.01.28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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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누군가 해야 한다면 우리가......
입양은 아이에게 전부를 주는 것
사진: 박준영

강내우(성악가, 버금아트미션 대표) 이지민 부부가 4명의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가평에 다녀왔다. 그들의 자녀 4명은 모두 입양아동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입양 연령대가 1세에서 3세 미만으로 전체 입양의 95.6%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4.4%에 속한다. 입양된 아이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강내우
입양에 대한 큰 뜻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예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입양이라면 그 누군가가 ‘우리’가 된 것 뿐이예요. 입양을 결심하고 나서 바로 실행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입양기관을 찾아가 상담도 받고 보육원도 찾아다녔어요. 그렇게 해서 만난 아이들이 강 햇살(당시 4세) 강 이슬(당시 3세)입니다.
당시 햇살이는 사두증 (머리뼈가 비대칭적으로 변형된 질환)으로 교정용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어요. 입양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인 햇살이를 보니 외면하기 힘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햇살이는 저희 부부의 첫 딸로 입양이 됐어요. 햇살이와 함께 한 방에 있던 이슬이는 다음해에 입양했어요. 입양이 한 번에 한 명씩 진행되기 때문이었죠. 그 후로 하늘이(당시 14세) 산이(당시 10세)가 저희 집에 왔어요.

 

입양자체는 행위이지만 양육은 삶이다....


이지민 
아이들을 입양하고 양육을 시작해보니 만만치가 않았어요. 햇살이는 야경증 (소아에 주로 발생하며 자다가 갑자기 깨어 비명으로 시작되는 공황상태를 보이는 질환)을 앓았는데요. 매일 밤마다 자지러지게 우는데 어떻게 해도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어요. 한약을 먹여봐도 소용이 없었죠. 모든 부모가 그렇듯 저희도 부모는 처음이라 많이 힘들었어요. 꼬박 2년을 울었어요. 둘째 이슬이는 폭식증으로 나타났어요. 구강기와 항문기가 혼재돼 있다는 걸 처음엔 몰랐어요. 부모와 신생아 사이에 형성되는 절대적 친밀감의 시기를 놓쳐버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결핍의 증상들이었어요. 아이들이 나이를 먹었다고 그 과정이 생략되지 않아요. 이런 아동을 특수욕구아동이라고 말해요. 이때 겪은 힘든 시간은 저희를 성장하게 했어요.

 

두 딸 모두 베이비박스에서 발견 돼......

베이비박스는 생모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찾아가는 곳......

사진: 박준영


강내우
사람들은 베이비박스에 아기들을 버린다는 표현을 해요. 그러나 그런 시각은 옳지 않아요. 제주도에서 아이를 출산한 미혼모가 신생아와 함께 비행기를 타지 못해 배를 19시간 타고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갖다 맡겼어요. 버린 것이 아니라 아기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죠. 베이비박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부정적인 사례를 미화시키려는 건 아니예요. 그러나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맡길 수밖에 없는 그들의 스토리를 알면 쉽게 비난할 수 없다는 거죠.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이들은 근친, 혼외 등 호적에 올릴 수 없는 아이들이예요. 특례법으로 입양기관의 보호를 받지 못해요. 이런 아이들은 보육원으로 보내지게 돼요.

 

공개입양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지민
아이들을 입양하면 등본에 출생이 아닌 전입으로 기재돼요. 입양을 숨길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예요. 입양아에게 끊임없이 긍적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으면 저절로 부정적인 이미지는 형성돼요. 입양을 숨기는 행위는 입양아에게 ‘너는 부끄러운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요. 그러나 공개입양이 정답이라고는 말 할 수 없죠. 생각이 다 같지 않고 처한 환경도 각자 다르니까요. 저희 부부가 공개입양을 선택한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생각했기 때문이예요.

 

부부는 사랑해서 결혼을 하지만 입양은 사랑하기 위해서 한다.


강내우 
공개 입양을 꺼려하게 된 사회적 배경 중 하나는 드라마를 빼놓을 수 없어요. 출생의 비밀 뭐 이런 단골 소재로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형성시켰죠. (웃음) 저희 부부는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는게 더 건강하다는 결론을 냈어요. 그래서 방송 출연도 했고요.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감수해야 할 몫이 있구나를 알아갔죠.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사진: 박준영


이지민
예를 들면 이런거예요. 인간극장이란 프로에 저희 가정이 소개 됐는데 식사하는 장면이 나갔어요. 저희 집엔 식탁이 두 개 있어요. 남편과 저와 하늘이는 어른용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산이, 햇살이, 이슬이는 유아용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해요. 그 장면이 방송에 나간 후 사람들이 ‘왜 아이들과 떨어져서 밥을 먹냐. 참 정 없다. 입양해서 저렇다.’ 하는거예요.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죠.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하고 듣는 입장에선 상처가 되고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어요.

강내우
저희 부부는 아이들이 저희를 부르는 호칭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가르쳤어요. 가정마다 양육방식의 차이인데 이런 호칭에도 입양이라는 필터를 끼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뭐를 해도 입양이라는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구나 알았죠. 특히 입양아동에 대한 안 좋은 기사가 나면 저희 입양부모들은 죄인이 돼요. 마치 잠재적 범죄자가 돼버리는 느낌이예요.
입양에 대한 편견을 깨는 방법이 있을까요?

강내우
편견을 깨는 방법은 입양이 활성화 돼야 해요. 제가 방송에 저희 가족이 나간 후 ‘가평별곡’이라는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고민이 됐지만 용기를 냈죠. ‘입양모델하우스’ 또는 ‘입양선교사’로 저희 스스로에게 사명을 부여했어요. 아이들을 양육하는 모습이 공개 되자 ‘왜 그렇게 하느냐’ 반응이 다양했어요. 저희는 성경중심의 양육을 해요. 잘못하면 체벌도 해요. 예민한 피드백을 받게 되는 이유죠.
편견은 무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보여드리는 건 조금이나마 편견을 없애고 싶어서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칭찬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런 반응에 흔들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희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을 알기 때문이예요. 만약 저희 아이들 얼굴에 멍자국이 있고 상처가 난 걸 보면 대번에 표정이 달라지겠죠. 저희 입양부모들은 이런 부담을 안고 평생 갈 수도 있어요.
입양가족 중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셨어요. 누가 나를 한 달에 한 번씩 감시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요. 그만큼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거죠. 제가 유튜브로 아이들 영상을 올리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예요.

이지민
입양에 대한 편견은 다양해요. 제가 처음 어머니가 돼서 햇살이를 양육하는데 야경증에 대해 몰랐어요. 밤마다 같은 시간에 깨서 무섭게 우는데 아무리 달래도 멈추지 않는거예요. 밤에 잠도 못자고 낮에도 늘 긴장상태였죠. 너무 힘들어서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그러게 왜 입양을 해서 고생이냐’ 라는 답이 돌아와요. 저는 그 말을 듣자고 이야기 한 게 아닌데 이구동성으로 ‘입양은 더 하지 마라’ 이런 말로 결론을 내요.

강내우
그래서 저희는 입양부모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양육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까? 밤을 새서 토론하기도 했죠. 저희집에서 입양가족 모임을 2박 3일 한 적도 있어요. 전국에서 다 올라오셨는데 70여명 됐어요. 텐트치고 주무셨죠.
힘들게 첫 아이를 양육하면서 둘째 입양을 계획한 건 서로에게 평생 함께 할 친구같은 자매를 만들어주고 싶어서였죠. 저희에게 둘째 입양은 임신과 똑같은 형태예요. 둘째 입양을 하지 말라는 건 낙태하라는 것과 같아요.

이지민
입양은 매일 매일 아이들을 사랑하겠다고 의지적으로 결단을 해야 해요. 저절로 사랑이 내 안에서 우러나올때까지 끊임없이 결단을 해야 하죠. 이론적으로 입양부모와 입양아의 친밀함이 형성되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요. 가령, 4세에 입양했으면 8세가 돼야 일반 가정처럼 된다는 거죠. 우리 큰 아이가 14세에 왔으니 이론적으로 계산하면 28세가 돼야 부모 자식의 유대감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 시기를 앞당기는 건 부모 몫이겠지요.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많으셨을텐데 어떤것들이 있을까요?

이지민
너무 많아요. 아까 말씀 드린 햇살이는 사두증으로 헬멧을 오래 착용해서 산만했어요. 밤에는 야경증으로 2년동안 울었고요. 이슬이는 폭식증으로 4개월 고생했고요. 산이는 제가 어딜가도 시선이 저를 따라다녔어요. 화장실앞에서 저를 기다릴정도로 불안증이 심했어요. 하늘이는 손톱을 뜯었고요. 우리 아이들 모두 제때 아동발달기를 거치지 못해서 나타난 결핍증상이었어요. 양육하다보니 이렇게 해선 안되겠구나 싶어서 제가 일을 그만두고 하루 24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했어요. 신기하게도 제가 아이들과 함께 홈스쿨을 하면서 결핍증상들이 사라졌어요. 그때 느낀 건 무엇보다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구나 였지요.

강내우
우리 아이들에겐 이 방법이 맞았던거죠.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교수를 그만두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가평으로 왔어요. 저희 아이들은 핸드폰이 없어요. 아이들 넷이 각자 방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걸 상상했더니 너무 끔찍한거예요.(웃음)
큰 아이 하늘이와는 처음에 이런 문제로 갈등이 있었죠. 지금 하늘이는 대안학교 기숙사에 있는데 학교 방침이 핸드폰 사용금지라 적응됐어요. 학교에서 친구들 모두 없으니까 불만이 없는거죠.

이지민
보육원에 가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어요. ‘안아주세요’ 예요. 봉사자들이 방문하면 전부 같은 말을 해요.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들이 저희와 함께 살면서도 손님이 와서 잘해주면 손님이 돌아갈 때 따라간다고 떼를 써요. 처음엔 당황했어요. 그만큼 아이와 아직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에 맘도 아팠어요. 그후론 손님에게 미리 부탁을 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혹시 따라간다고 나서면 ‘너희 집은 여기야’ 라고 말을 해달라고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이지민씨는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이지민씨의 눈을 마주치면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애써 눈을 피해야만 했다. 부부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말이 있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였다.
그 부부에게 ‘입양’에 대한 정의를 듣고 싶었다.
 


강내우
입양은 단순히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의 인생에 아이를 끼워 맞추는게 아니라 아이의 삶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위탁과 입양의 차이는 완전 달라요. 입양은 전부 내어주는거예요. 입양되는 순간 법적 상속권이 아이들에게 주어지죠.
인간관계 중 가장 복잡한 관계로 ‘입양삼자’를 들어요. 입양이라는 단어 안에는 낳아준 부모와 키워준 부모 그리고 입양아의 감정이 모두 담겨 있어요. 생부모의 극도의 슬픔, 입양부모의 극도의 기쁨, 중간에서 이 모든 감정을 공유하는 입양인을 가르켜 ‘입양삼자’라고 해요. 드러낼 수 없는 생부모의 아픔은 누가 치유할것인가 마음이 무겁죠.

이지민
저희들이 공개입양을 하고 아이들의 일상을 올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분들을 위로해드리고 싶어서였어요. 이렇게 아이들 사랑받고 잘 자라고 있다. 힘내시라는 말씀을 영상으로 드리는거죠.
 

입양 후 기쁜 일은 무엇일까요?


이지민
힘든 일보다 기쁜일이 더 많아요. 제가 감정적으로 야단을 치기도 해요. 그런 날이면 마음이 무겁고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그런데 아이들이 저를 보고 웃어주면 눈물이 나요. 제가 어머니라는 자리를 포기하지만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잘 자라겠구나 믿음이 생겼어요.

강내우
누가 저를 웃게 해주겠어요. 우리 아이들의 가치는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하시나요?


강내우
부모 마음 똑같죠. 건강한거요. 각자 자기 재능을 찾아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바라지요. 그리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고요.

이지민
저도 같아요. 우리 아이들이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해요. 입양은 죽을때까지 삶의 모든 순간순간이 입양과 맞물려 있어요. 나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을까? 내 부모는 어떤 상황에서 날 유기했을까? 미지의 감정과 늘 씨름을 해야 하죠. 아이들 마음에 내재 돼 있는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해소시켜주는 건 매우 중요해요.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우선돼야 해요.



이지민씨는 말한다. 이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당연’과 ‘마땅’이라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힘이 들었다. 나로선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이었다. 강내우씨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 아버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힘든데 힘들지 않다. 이 말을 하는 부부의 얼굴이 해처럼 빛이 났다.
그들 부부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질문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혹여, 내가 던지는 질문이 그들에게 짐을 지우는 일은 아닐까 인터뷰를 끝낼 무렵 마음이 무거워졌다.
향후 입양계획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던진 내 질문에 그들의 대답은 명쾌했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들이 많아요. 이 귀한 노하우들을 묻어두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11월 마지막 날, 가평의 밤은 추웠지만 춥지 않았다.

 

강내우

- 이탈리아 G.Paisiello 국립음악원 수석졸업
- E.Segattini 국제콩쿨 1위, Ercolano 국제콩쿨 한국인 최초 칸쵸네 부문 1위,

P.Cappuccilli 국제콩쿨 2위, V.Bellini 국제콩쿨 3위 등 10여회 수상
-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사랑의묘약, 토스카, 라보엠 등 수십여회 주역
- 버금아트미션 대표

 2020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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