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3)특별한 양육법 : 메타인지 그리고 독립정신
[교육칼럼] (3)특별한 양육법 : 메타인지 그리고 독립정신
  • 최지연 인재기자
  • 승인 2021.02.02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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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메타인지를 키워주기 위해 필요한 요소. 첫 번째 독립

◆메타인지를 키우는 키워드 ‘독립’

지난 칼럼에서 메타인지의 중요한 메커니즘은 실수라고 했다.

그 중요한 실수를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는 것 즉, 독립이 필요하다.

실수와 독립은 또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서 실수가 유발되고, 실수의 과정을 통해 독립하게 된다.

자기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는 것이 독립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나이에 맞는 독립을 때마다 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필자의 큰 딸 4살 때의 일이다.

종이로 만든 큰 놀이 집이 유행하던 시절 아파트에 1층 출입구 앞에 가전제품 배달이 왔다. 커다랗고 튼튼한 가전제품의 박스를 벗겨내는 순간을 포착하고 달려가서 득템을 했다.

그 박스로 오랜 시간 동안 종이 집을 만들었다.

아치형으로 파낸 다음 진짜 경첩을 달아서 문도 만들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열심히 집을 만들었다.

집을 꾸미던 중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붙이겠단다. 투명테이프 커터기에 톱니 모양 칼날이 있어서 높은 곳에 올려두었는데 그 당시 배가 불러있었기에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힘든 상태였다. 그냥 엄마 생각에 붙이기에 필요한 만큼 떼어주면 그 순간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하루 불편하고 영원히 편하게 살기를 선택했었다.

“몇 개 필요해?”

“한 개요.”

“잘 생각해봐.”

“한 개요.”

한 개만 붙이면 떨어질 줄 알았지만, 한 개만 주었다. 일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똑 떨어지고 말았다.

다시 달란다.

“잘 생각해, 네가 달라는 만큼 줄 거야. 얼마큼 주면 붙일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말해줘.”

아이의 대답은 여덟 개였다.

여덟 개 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하나, 둘, 셋, 넷, 하며 한 손가락에 하나씩 붙여가며 여덟 개를 주었다.

여덟 개를 붙이고는 떨어지지 않아서 만족했다.

그런데 계속 쳐다본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테이프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말했다. “4개만 붙이면 되겠어요.”

걸려들었다.

 

◆작은 것부터 독립을 준비시켜보자.

김미영 저<아이의 스케치북에 손대지 말라> 프랑스에는 크레파스가 없단다. 뾰족하게 깎은 색연필을 준단다. 두루뭉술한 것만 사용하는 아이가 예리해 질 수 없다는 논리였다.

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적용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느낌이 왔다. 이것도 독립심을 기르는 훈련에 적합할 것 같았다. 가지고 있던 색연필을 바로 쓸어버리고 뾰족하게 깎아서 사용하는 연필 같은 색연필로 바꿨다. 색연필과 함께 가위도 바꿨다. 종이만 잘라지는 플라스틱 가위에서 쇠붙이 가위로 바꿨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뾰족한 색연필과 가위의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과 잘못 사용할 때의 위험하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딸아이는 그 가위로 자기의 머리카락을 한 무더기를 잘랐고 예쁜 새 내복을 싹둑 잘랐다.

걸려들었다.

억지웃음을 짓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무지 친절한 척 하며 알려주었다.

그렇게 뾰족한 연필과 가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예리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장착함으로서 아이는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기교육을 얘기 하는 것이 아니다.

선행학습을 얘기 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억지로 시키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김치를 담글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김치를 담글 줄 아는 사람은 사먹고 싶을 때는 사먹을 수도 있고, 담가 먹고 싶을 때는 담가먹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난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는 것이며, 또한 새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에서 파생되고, 또 파생되어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자녀가 각 분야에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아이가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영장에 가서 물에 밀어 넣는다고 멋들어지게 자유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학교에 가서 교실에 밀어 넣는다고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피아노도 태권도도 젓가락질도 방법을 알려주지만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공부만큼은 방법론적인 접근을 시켜 주지 않는다.

학습에서의 독립을 <자기주도학습>이라고 한다.

모든 부모님은 자기가 해야 할 것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실천까지 해내는 이상적인 자녀로 자라나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부모님들은 너무 친절하다. 그리고 형제도 없는 경우가 많아 나눠 쓸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다 아이의 것이고, 모든 상황은 아이가 기준이 된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해 나갈 수 있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을까?

너무 친절한 부모가 되지 말자.

항상 예의주시하고 관찰하고 보호하며 사랑으로 양육하되 가끔은 아이가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하게 해주자.

사랑하는 자녀에게 2021년도에는 ‘모든 것을 공급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넘어 ‘스스로 할수 있다. 해냈다!’ 라는 쾌감을 선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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