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일상과 영원회귀사상
[간호사의 단상] 일상과 영원회귀사상
  • 김혜선 인재기자
  • 승인 2021.02.15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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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회귀사상 [ 永遠回歸 , Ewige Wieder-Kunft]

니체의 공상적인 관념. 그에 의하면, 생(生)은 원의 형상을 띠면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고, 피안의 생활에 이르는 것도, 환생(還生)하여 다음 세상에서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것도 모두 부정하고, 항상 동일한 것이 되풀이된다는 사상이다. 여기에서 니체는 현실의 삶의 고뇌와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만을 충실하게 생활하는 데에 생의 자유와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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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평일 연차는 오롯한 나를 위한 시간이 될 수 없다. 첫째 아이 학교 보낸 후 안 일어나겠다고 시위하는 둘째 아이를 깨워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잠시나마 나의 시간이 온다. 오늘은 병원에서 일하는 내가 연차를 받아 또 다른 병원을 향해야 한다. 엄마의 진료를 위해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 70대는 청년이라고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 드넓은 종합병원의 복도에서 어딜 가야할지 몰라 어리둥절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본 뒤로 나는 가능한 같이 따라나선다. 진료를 받고 약국에서 약을 사니 벌써 오후 3시다.

"딸내미가 같이 와주니까 이렇게 금방 하지, 혼자 다니면 바보라 아무것도 못하네."

어렸을 때 엄마는 못하는 게 하나도 없고 엄마의 품안에 있으면 무서울 게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로 따라 나서고 엄마가 나에게 기대게 되었다. 사람의 인생이 하나의 긴 여정이라는 말,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좀 크고 나면 기고만장해서 혼자 모든 걸 다 해낸 것처럼 다닌다. 그러다가 짝꿍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가며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품어야만 함을 알아가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예전의 사진들을 보면 지나온 시간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변해있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를 열심히 채워가야 한다. 오늘은 추억으로 쌓여져 갈 것이며 평범하고 잔잔한 일상들을 진주알 엮어가듯 살아가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니체는 우리가 변하지 않는 생각에 갇힌걸, 갇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데 경종을 울린 철학가다. 그는 우리를 가둬놓은 담벼락을 '신'으로 표현했고 ‘신은 죽었다’고 말함으로 우리의 담벼락을 타파하려 했다. 니체는 또한 영혼회귀개념을 우리에게 던져주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10만 년 전에도, 20만 년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될 일이므로 똑같은 삶을 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라고 얘기한다.

▮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내용을 그대로 연장하면 된다는 사람이 있다면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백 년을 넘게 사신 연세대학교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님이 우리에게 해주는 이야기도 니체와 같은 맥락이며 여기에 덧붙여 사랑하고 감사하라고 하셨다. 현실에서의 내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지금 살아온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 해도 후회 없을 그런 삶이 진정 잘 사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헛발질하는 것 같고 제자리만 뱅뱅 도는 것 같은 날들 속에서 니체와 교수님의 글은 나를 그리고 오늘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비록 오늘, 자유시간은 거의 없고 나를 위함보다 누군가를 돌보기 위한 시간들로 채웠지만 푸념하지 않고 사랑하며 그럼으로써 행복하고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이지만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나를 나누고 마음을 쓰는 과정 중에 생기는 웃음소리와 따뜻함은 구멍 난 마음을 행복으로 메꿔준다. 아기엄마가 밤잠 못자며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의 웃음 하나에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살아가는 모든 건 삶의 재료가 되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져 우리의 하루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궁극적인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준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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