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 칼럼]과거로의 내면여행, 유년기를 보다.
[황정미 칼럼]과거로의 내면여행, 유년기를 보다.
  • 황정미 인재기자
  • 승인 2021.03.02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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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성격을 규정짓고 '그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면 기분이 어떨까?

지나가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사람이 내게 행운을 주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1년 동안 이 단순한 두 가지 질문을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게 물었다.

불쾌할 줄 알았던 성격의 규정은 모호하고 답답했던 마음을 해결해서 좋고, 지지 받아서 좋다고 했다.

그림을 통한 무의식의 경험은 마음이 무거웠던 원인을 해결해서 좋다고 했다.

그러나 매주 사람의 마음은 상황에 굴복하고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본질을 회피하면서 파도에 휩쓸린다.

TranSurfing 해야 했다. 서핑하듯 파도에 몸을 맡기고 흐름을 타도록 해야 했다.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가장 아이다운 기색을 갖추도록 노력했다.

그것이 '그림 치유'였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가족 상은 무얼까?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최수종이 표본인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건강한 아빠, 션이 표본일까?

살면서 싸울 수 있고 화해하고 안아주는 일련의 과정이 더 단단한 가족애를 만들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문제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 수많은 다툼과 분노의 현장은 유년기의 결핍이 되고 잃어버린 메시지를 양산한다.

그래서 화를 표현하는 분노가 아니라 후회가 동반된 분개의 모양으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로 가는 내면 여행은 두렵고 떨리고 불쾌하고 슬프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모여 있던 적이 없어요."

각각의 공간에서 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동안, 어린 00 이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다.

사랑받기 위해 애를 쓰고, 사람 받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내면 여행을 통해 쏟아 낸 눈물이 심장에 근육을 만들고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00 이는

"아직도 다 같이 모여있는 가족은 상상이 안돼요."

나는 그녀의 생일을 위해, 다 같이 모여있는 그녀가 유년기에 경험하지 않은 가상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우리가 표본으로 가지고 있는 단란한 가족의 그림이 그녀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하고 기도하고 그렸다.

그림의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유년기의 가족상이 맞을까?

필자 또한 경험한 적 없는 표본인지라 어색한 밑 그림을 색칠하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대의 유년기는 아마 이랬어야겠죠? 그대의 예쁜 얼굴을 그대로 넣어보았습니다."

"저렇게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면, 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겠죠..."

의외의 답변이다.

"미래의 그대의 가족이 이랬으면 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도 수용할 수 있겠어요. 파도가 험난하게 치면 잠시 쉬어갈게요. 흐름대로 살게요..."

단단한 답변이다.

과거의 내면 여행이 아픈 과거를 헤집고 눈물을 쏟아내게 해도 필요하다면 가보자.

아픈 과거를 직면하고 축복으로 놓아주자.

필자가 그렇게 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어서

소박한 그림에도 웃고, 나와 다른 그림도 수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가?

그대의 가족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단란한 모습'에 흔들리는가?

꼭 이렇게 웃고 안고 포용하지 않더라도, 내 옆에 있는 그와 그녀는 가족이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이다.

내면 여행을 통해 유년기를 경험하고 온 그대여,

자, 이제 당신이 표본을 정하자.

떡볶이와 치킨을 앞에 두고 서로 먹겠다고 다투는 모습이 단란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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