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내 뜻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는가!
[간호사의 단상] 내 뜻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는가!
  • 김혜선 인재기자
  • 승인 2021.03.11 1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Caro Mio Ben>.

그 선율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난다. 수업 시간에 이태리어를 몰라 한글로 까로미오벤..’하며 가사를 쓰던 기억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고등학교 시절, 악기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1학년까지만 했다. 부모님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우리 집 사정으로는 부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없다. 하지만 생이 다시 시작된다면 예술가의 길을 가보고 싶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악기들을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불어보고, 연주하고, 합주를 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나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Caro Mio Ben>의 여러 버전을 들으며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을 구별하고 선율을 따라가며 들을 수 있겠는가? 끝까지는커녕 입구에서만 서성이다가 돌아선 길이었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기쁨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샛길로 빠져서 누리는 기쁨을 말이다.

 

 

세상에는 프리마돈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주로 비춰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이들로 인해 돌아간다. 프리마돈나가 아니라고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세상을 원망하고 탓하는 건 자신을 망칠 뿐이다. 우리 사는 인생이라는 게 발생한 일이 20%라면 그 일에 대한 자세가 80%이다. 그러기에 같은 사건이 일어나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지난 후 결과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인사이동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는 승진을 하고 기대했던 누군가는 또 안되는 게 세상일이다. 결과에 불만을 가지면 힘든 건 본인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인사권은 내 영역이 아니야. 안됐다면 내 자리가 아닌 거지.'하며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결과를 인정해버린다. 목소리를 타고 나온 말은 힘이 있다. 그 영향력으로 마음이 정돈되며 편안해진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힘든 이들을 위해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해본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 버들씨앗

이렇게 시작해보거라

 

씨앗의 입장에서 프리마돈나의 조건은 평평한 땅, 질 좋은 흙 그리고 따뜻한 햇볕이 드는 곳이 아닐까? 하지만 어디 마음대로 되겠는가. 비가 많이 와서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떠내려갔을지라도 씨앗은 그 자리에서 싹을 틔운다. 아스팔트의 틈, 벽돌 사이, 갈라진 담장일지라도 말이다. 묵묵히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친구 한둘과 함께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은 조용히 우리를 다독인다. 좁은 틈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들이 기특하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그들에게 감사하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어 고맙다. 이 봄, 또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싹들이 피어날 것이다. 그대의 자리가 어디일지라도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씨앗처럼 자신만의 봄을 만들어가기를 응원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