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목사의 세상읽기]인터넷에 떠도는 서경석 목사에 대한 오해의 글들
[서경석 목사의 세상읽기]인터넷에 떠도는 서경석 목사에 대한 오해의 글들
  • 김시온
  • 승인 2016.05.02 0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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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멘스?

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

▲ 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 집행위원장 서경석 목사

안녕하세요. 서경석목사입니다. 오늘은 참다 참다 못해 제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인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시위할 때 불법시위라고 맹비난하더니.. 막상 그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 닥치니 그 자신도 불법시위를 하는구나..쩝.”


이말은 인터넷에 “서경석목사 철거”를 치면 그냥 나오는 글귀입니다. 저는 저에 대한 비난글이 인터넷에 도배되어 있는 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비난글을 방치했더니 글들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정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교회에도 크게 누가 되고 우파에게도 크게 누가 될 것 같습니다.


비난글의 내용인즉 용산참사가 나고나서 서목사가 불법과격시위를 비판했는데 막상 자기 교회가 철거되니까 서목사가 길거리에 드러눕는 등 불법시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코메디”랍니다. 저는 평상시에 좌파의 공격목표입니다. 이것은 제가 자초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좌파로부터 공격당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난글을 마냥 방치하다보니 저는 “보수(또는 꼰대)라고 일컫는 일부 어리석고 우매한 사람들의 전형적 자화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설명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용산참사가 났을 때 전철협을 향해 그런 식으로 과격폭력시위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용산 세입자들이 자기 문제를 가지고 교회를 찾아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전철협을 찾아간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교회를 찾아갈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못했다고 반성했습니다. 꼭 1917년 러시아혁명과 비슷했습니다. 당시 러시아정교회가 부자 편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러시아정교회를 찾아가지 않고 공산주의자들과 연대하는 바람에 러시아혁명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사회책임>성명을 통해 용산참사에 대해 한국교회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도 한국교회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반성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김포지역이 재개발되면서 60여개의 교회가 그 지역에서 완전히 쫓겨났습니다. 그분들이 교단총회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찾아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재개발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 저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교회가 쫓겨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면 나는 돕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이 억울하게 쫓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하면 나도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주민들이 다 살게 되면 여러분도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이 동의했고, 그래서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청 앞에서 목사님들과 지역주민들, 기독교사회책임 등 2백명이 모여 집회를 했습니다.


제가 담임목사로 있는 서울조선족교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서울조선족교회는 구로구 구로동에 있고 철거지역도 아니고 철거당할 위기에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철거위기에 닥치니까 나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재개발정책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재개발과정에서 가난한 주민 7-80%가 내쫓기고 그 자리를 외부의 돈 있는 주민들이 채우는 방식에 저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경실련 당시의 주택정책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대책도 연구하여 제 생각이 옳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재개발정책은 과거 전두환정권 당시 돈 없이 주택을 대량건설하기 위해 만든 미봉책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청 앞 집회를 아무 언론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조중동은 이 운동이 좌파적이라고 생각해서 보도하지 않았고 한겨레, 경향은 우파인 서경석목사가 주동자이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보도가 안 되면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어 운동이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미국 시민운동이 하는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운동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이 방식은 항의의 표시로 경찰의 폴리스 라인을 넘고 자발적으로 체포된 후 벌금을 내고 석방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과격폭력 집회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저는 그 해에 <나눔과기쁨> 목사님들과 함께 7번 집회를 했습니다. 광화문 길거리에서 목사님 40명이 가운을 입고 드러누웠습니다. 시민들과 같이 할 수 있었지만 저는 기독교가 재개발 과정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편이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목사님과 드러누웠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조선일보가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청 앞에서 2백명의 목사님이 길거리를 가로 막았다가 30명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십여명이 몸에 체인을 감고 을지로입구 도로 한가운데에 드러누웠다가 전원체포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시법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두 번 체포당했고 벌금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나눔과 기쁨>신년하례회를 하면서 전국에서 올라온 5백명의 목사님들이 숄더를 어께에 두르고 재개발정책 변경을 촉구하는 길거리 행진을 했습니다. 신년하례회에 참석했던 황우여의원도 우리와 함께 행진했습니다. 그 후에야 정부의 재개발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그간의 상황입니다. 이제는 잘 이해해 주세요. “대한민국 최고의 코메디”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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