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6) 자기 주도하는 법을 알려주는 부모의 특별한 사랑법
[교육칼럼] (6) 자기 주도하는 법을 알려주는 부모의 특별한 사랑법
  • 최지연 인재기자
  • 승인 2021.04.0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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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부모가 좋은 부모다?

 

 

◆ 자기주도는 누구나 가능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아이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이런 모순은 왜 발생하는가?

이건 모순이 아니다. 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판단에 오류가 발생 한 것이다.

“이 정도는 당연히 알 것이다.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알려주지 않는다.

“이 정도는 모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가르치고, 상황에 개입한다. 더 나아가 대신해준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방법을 몰라서 못하고 있는데, “이것도 못하냐.”라는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충분히 혹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데 아기처럼 다해주는 엄마 덕분에 경험해보지 못하고 실력이 늘지 못한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엄마가 대학생 딸한테 남자 친구 만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다가 한해 두해 나이는 먹어가고, 서른 넘어서도 연애할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는 딸에게 “너는 여태 뭐 했냐?” 라고 말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사실 아이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알아서 하겠지.”, “때가 되면 하겠지.”, “좀 더 크면 하겠지.” 하며, 가르치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는, 기다림의 선이 넘는 순간 “넌 여태 이것도 못하면 어떡하냐.”라고 한다.

필자는 앞선 칼럼들을 통해 아이의 속도, 부모님의 과잉 친절의 불필요함, 예리함 등에 대해 말하였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언제나 부모의 위치에서 줘야 하는 사랑의 형태가 있다. 아이를 잘 가르쳐줘야 한다. 아이는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오랜 기간 가르칠 대상이다.”

부모의 위치에서 줘야 하는 사랑의 형태가 있다. 그러나 부모 스스로 기준을 삼아 무언가를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아이에게 잘 가르쳐 줘야 한다. 상냥하게 A부터 Z까지 모조리 가르쳐 주는게 아니다. 사랑으로 관찰하고, 양육하며 아이의 속도에 맞춰,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공급해야 할 것들을 예리하게 조절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관심을 가져야하지만 때로는 무심한듯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일관성 있는 태도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오랜 기간 동안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당장에 영어 단어를 몇 개 더 아는 것과 수학을 얼마나 선행했냐가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모든 부모님은 메타인지를 키워주고 싶고, 자기주도 학습이 되는 아이로 자라기 원할 것이다. 자녀가 스스로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알아서 계획하고 실행해 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들이 행복하고 그 과정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룬 삶을 살아가길 원할 것이다.

◆ 아이의 알림장을 보지 마라!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부모님을 위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팁을 나눈다.

요즘은 알림장은 학교에서 휴대전화의 앱으로 알림이 오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를 가면 알림장을 쓴다. 이제 4월이다. 이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그리고 학교에 슬슬 적응이 될 때이다.

일단 이 칼럼을 읽는 순간부터 알림장을 보지마라.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어라.

“엄마는 이제부터 너의 가방을 열고 알림장을 보지 않을 거야. 알림장을 보여달라는 말도 하지 않을거야. 준비물은 챙겼니?라는 말도 안 할거야. 학교에 다녀오면 네가 엄마한테 보여주면 볼 거야. 그리고 숙제나 준비물을 스스로 챙겨야해, 혹시나 빠뜨리게 되면 스스로 책임지는거야. 엄마와 함께 준비해야 할 게 있으면 엄마한테 미리 말을 해줘.”

처음엔 실수할 수도 있다. 반대로 긴장해서 정말 잘하다가 어느 순간 놓칠지도 모른다. 그때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해선 안된다.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 ‘알림장을 보지 않기’를 선택한 것뿐이다. 계속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 아이는 차차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체크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준비물을 챙기게 될 것이다. 혹시나 준비물이나 숙제를 깜빡 잊고 학교에 가게 된다면 뼈저리게 배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금은 홈스쿨링을 하고 있지만 삼 년 전 첫째가 5학년 때 수련회를 갈 때 있었던 일이다. 1박 2일이었기에 세면도구부터 갈아입을 옷까지 챙겨야 했다. 준비물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어려서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하는 아이로 양육해왔기에 수련회 가는 짐을 엄마가 챙길 필요도 가방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는 스스로 가방을 챙겼다. 짐이 어느 정도 되는지 스스로 체크하고 적당한 크기의 가방을 준비했다. 짐을 챙기는 과정에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와 공용으로 사용되는 물건을 가져가도 되는지 허락을 맡는 것 외에는 모든 걸 스스로 준비했다. 평상시와 다른 등교 시간을 나에게 알려주고, 일정을 얘기해 주었다. 그렇게 아이는 자기주도적으로 준비한 수련회를 갔다. 다음날 다녀온 얘기를 쏟아놓는 과정에서 정말 놀라운 일이 있었다. 어떤 아이가 저녁에 씻으려고 가방을 열더니

“에이씨, 엄마가 수건을 안 넣었어!” 하고 신경질을 냈다는 것이다.

딸이 덧붙인 말은 왜 자기가 안 챙겨놓고 엄마한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딸아이의 말투는 친구를 무시하거나 나쁘다는 말투가 아니라 정말로 왜 자기가 빠뜨렸는데 엄마한테 그러는지가 궁금한 말투였다.

부모는 아이가 독립된 인격체로 스스로 상황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며 그 결과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기를 도와야 한다. A부터 Z까지 다 가르치라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라는 말이 아니다. 무관심과 무책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무한 관심과 무한 책임의 태도를 가지되 무조건적인 개입이나 자라지 못하도록 챙겨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시간과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 미리 시작할 수 있는 건 미리 해보자는 것이다. 사람은 뭐든지 한 번에 잘 할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잘하게 되는 역사는 없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습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행착오들이 쌓여 아이의 메타인지와 자기 주도는 형성될 것이다.

 

자녀를 향한 깊은 사랑으로 불친절을 시행해보자.

바로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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