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 무형의 ‘간호’, 유형의 ‘간호사’]
[간호사의 단상 : 무형의 ‘간호’, 유형의 ‘간호사’]
  • 김혜선 인재기자
  • 승인 2021.04.08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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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는 사람의 손과 입에 도움을 받아 소리를 울려내되 소리의 영역과 경계를 넓고 깊게 만들어 사람에게 되돌려준다······소리는 악기에게 와서 비로소 울림으로써 그 존재를 드러내며 산 자의 생을 현재화하고 실감으로 살려낸다······소리의 발생과 사라짐 사이의 인과관계는 비교적 명료하지만 그 근원은 사람의 생의 근원이 그러하듯 아득하고 모호하다.” [김훈, 『현의 노래』중에서]

 

간호는 종합예술이다.

‘나’를 도구로 간호를 제공하는 총체적인 학문이며 인문학 그 자체다. 최상의 음악 연주를 위해서는 악기의 조율과 연주자의 뛰어난 실력이 기초되어야 하는 것처럼 ‘나’의 생각과 마음, 지식과 태도를 가꾸고 정렬시켜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악기와 연주자, 간호와 간호사의 관계는 동등하다.

 

간호사는 전문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통로다.

환자의 건강 회복 과정에서 간호사는 시작점이며 마침표다. 무형의 ‘간호’는 유형의 ‘간호사’를 통해 현재성을 드러낸다. 실체가 없는 간호는 환자의 입원과 더불어 시작되는 치료의 과정 – 환자 상태 파악, 처방 확인 및 수행, 검사 · 처치 · 수술 등의 제반 사항 시행, 환자교육, 담당의 · 검사실 · 이송요원 · 영양팀 · 행정팀 등 연관 부서와의 의사소통, 보호자 상담 등 –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며 활동성을 나타낸다. 간호는 무형의 에너지인 까닭에 실체는 없으나 입원에서 퇴원까지 간호사라는 통로를 지나면서 환자는 전문적인 돌봄을 체감하게 된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인간다움을 이해하는 건 기본이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밑바탕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간호사에게는 보다 요구된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돌봄의 미학인 간호로 꿰뚫는 건 간호사로서의 소명이자 직업의식이다. 이 의식과 자부심은 환자가 지나는 통로를 수준 높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간호는 나를 품어가는 시간이다.

이해되지 않고 무례한 사람들을 무수히 겪었음에도 간호사의 길을 가는 이유는 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빛’이 있기 때문이다. 고함과 욕설, 성냄의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참기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인정욕구를 피력하는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날개 펼침임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표현의 방법만 다를 뿐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마음의 평수는 확장된다. 문학은 간접적으로 남이 되어보는 연습을 하지만 간호사는 현장에서 직접 마주한다. 다양한 인생들을 직접 만난 간접경험이 간호사라는 ‘나’를 빚어간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핀 매화 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이 꽃구름은 그 경계선이 흔들리는 봄의 대기 속에서 풀어져 있다. 그래서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이것은 신기루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김훈, 『자전거 여행』중에서]

 

벚꽃이 찬란한 봄날이다.

뿌듯함도 있지만 고단함과 눈물이 어려 있던 나의 임상간호사의 시간은 꽃보라가 흩날리는 봄과 대비된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쭉정이가 날아가듯 고됨은 시간 속에 풍화되고 나의 별들이 알곡으로 남아 반짝인다. 별과 함께 점심의 햇살을 맞으며 산책을 한다. 같이 눈물 글썽이며 치열하게 일했던 동료가 나에겐 반짝이는 별이다. 봄날을 보며 즐거워하는 별이 내게 말한다.

“샘이랑 같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

무형의 ‘따뜻함’이 유형의 ‘별’을 통해 전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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