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 칼럼] 약함을 자랑하고 실패를 간증하라.
[황정미 칼럼] 약함을 자랑하고 실패를 간증하라.
  • 황정미 인재기자
  • 승인 2021.05.1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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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는 <<홀로 쓰고, 함께 살다>>에서 독자들의 수많은 질문에 진솔하고 충실하게 답변하고 등단 50년 문학인생을 반추했다.

『태백산맥』 『정글만리』 의 조정래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홀로 쓰고, 함께 살다>>에서 약함을 드러내고 실패를 자연스럽게 강조하는 솔직한 문장을 접하다 보니 거물급 작가 조정래, 그의 기본 정서를 이제야 이해했다.

우리는 [전문가]를 원하고 [성공]을 지향하는 작금의 시대에서 실패 사례를 말하는 것과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한다.

아니, 드러내면 안 되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가짜 얼굴, 가면을 쓰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100미터 경주 인생이 얼마나 지치고 허무한지를.

에니어그램 수업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는 유형을 마주한다.

성공을 지향하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과정보다 결과에 초점을 두는 유형으로 3번 유형을 예로 들 수 있다.(이 또한 뿌리를 알고 이정하면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고, 삶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에 집중하는 유형이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감정적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차단하려고 애쓴다.. 현대인들의 특성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페르소나가 강한 3번 유형이 건강하지 않을 때는 진짜 감정보다는 가짜 얼굴에 익숙해져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로 인해 실패한 것은 감추게 되고, 나약함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3번 유형의 죄라고 표현하는 '기만(Deceit)'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의 기만이 아니고, 자신의 성취 및 성공한 이미지가 곧 자신의 자아라고 믿는 그런 '기만'을 의미한다. 돈 리처드 리소러스 허드슨을 비롯한 여러 에니어그램 저자들의 책에서는, 3번 유형은 자신의 감정을 out of touch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타자가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서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그로 인해 얻어진 이미지 및 성취를 자신의 자아라고 믿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3번 유형은 배려심도 있고, 무엇보다도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자아 상이 크기 때문에 진짜 감정을 표출하는 훈련을 한다면 성취주의자라는 키워드에 맞게 가장 먼저 안정적이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다르게 적용한다면, 성취를 추구하고 전문가라는 인식만을 강조하는 시대에서 나약함보다 강함을, 실패보다 성공한 사례만 드러내고 있으니 긴 마라톤 인생을 단거리 달리듯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성공을 강조하는 자기 계발서 역시, 실수하고 넘어지는 사례는 간과하고 강함과 성공을 드러내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성공이 문제가 되고 강함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잘나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헛헛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함과 실패는 인생 여정에서 당연하기 때문이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린도후서 12장 9절]

약함을 자랑하고 실패를 간증하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보자, 가시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그 약점이 교만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약함은 강함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정말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다른 얼굴로 살아가는 것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까?

행복하고 싶고, 잘 살고 싶은 욕구는 문제가 없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꿈틀대고 있는 답답함은 덜 지우고 덜 벗겨 낸 가면의 찌꺼기들이다. 지우고 닦아내고 벗어내는 용기는 우리의 몫이다. 그래야 행복하다. 가끔은 민낯의 고백을 해보자. 민낯의 고백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어두운 시대, 빛으로 나아가는 소명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인생이 때로는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해보자.

약함을 자랑하고 실패를 간증하는 삶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소명의 자리, 빛의 자리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표현해보자.

그 소명의 자리에서 눈물 흘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픈 사람을 품게 되는 날, 기어코 그 눈물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원하기 때문에

[그만 울어도 되는 세상]을 위해 함께 손잡고 기도하고 있다고 고백해보자.

그제야 약함이 자랑이 되고 실패가 간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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