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한 인간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이다
[간호사의 단상] 한 인간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이다
  • 김혜선 인재기자
  • 승인 2021.06.03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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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언젠가부터 우리 귀에 들려왔던 이 유행어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9년 삼성생명의 광고를 통해서다.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한 표현으로 ‘라떼는 말이야’를 영어로 직역하여 ‘Latte is horse.’로 사용하기도 한다. 변화된 시대상을 보여주는 이 유행어는 예전을 들먹이며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려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심을 나타낸다.

 

토드 로즈교수의 『평균의 종말』에 따르면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슷해보여도 나름의 색깔로 칠해진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다. 경계선을 침범하는 일은 무례하다. 누구나 존중받기 원하며 존중은 서로의 공간과 간격을 인정함으로써 표현된다. 존중과 무시의 시작은 언어이며 언어는 몸짓, 행동, 표정 등의 비언어적 행동까지 포함한다. 언어는 동질성에 기반하며 물리적인 국경뿐 아니라 마음의 국경에 의해서도 사용언어는 달라진다. 자신만의 세계와 언어를 고집하면 상대와의 교점은 없어지고 감정은 불편해진다. 고집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음의 표현으로 나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다양성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논어에 나오는 ‘예’는 상대의 공간을 인정해주는 표현방식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예는 보편적인 가치의 도덕성을 지니면서 구체적 현실의 변화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닫힌 세계를 여는 해결책은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다. 문이 잠겨있을 때 열쇠를 갖고 있는 것만으론 열리지 않는다.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넣고 돌려야 한다. 같은 원리로 상대의 세계를 인정한다고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진심이 아니다.

 

‘꼰대라떼’의 특징은 불통(不通) 즉, 통하지 않음이다. 이 단어가 주로 상사나 권위적인 어른에게 통용되고 있지만 나이와 관계없이 막힌 사람은 누구나 ‘꼰대라떼’로 볼 수 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저자는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능력의 문제‘라고 이야기 한다. 공감능력이 없는 이와의 대화는 답답하다. 통하지 않기에 거부감을 유발하고 마음의 국경을 닫도록 만든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탈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고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라고 했다. 잔소리를 떠올려보자. 의도와 내용이 좋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잔소리를 원치 않는다. 간섭이라 여길 뿐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과 세계를 타인의 마음에 안착시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말이 음성화되어 밖으로 언표된 것이 언어’이며 ‘언어는 낱말로 구성’되고 ‘낱말의 전체성이 언어’라고 했다. 즉 ‘언어의 실존론적-존재론적 기초가 말’인 것이다. 그렇기에 상대의 언어를 먼저 잘 듣고 이해해야 한다. 잘 듣고 이해해야만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린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혜신씨는 ‘공감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라면 감정은 문고리이다. 감정을 통해서 존재를 만나게 된다.’고 했다.

 

진정한 교류는 대화의 양이 아닌 공감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감정에서 시작되며 논리적인 결정도 감정이 기초된다. 자신의 세계를 이해시키고 싶은가? 먼저 상대의 말을 공감하라. 이 세상에 상대와 나, 단 둘만 있고 지금 이 시간만 존재하는 것처럼 집중해보라. 이해를 넘어 공감에 이르면 서로간의 세계의 경계선이 서서히 희미해지며 교집합이 만들어질 것이다.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듣는 것이 대화다.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그것을 이해하려 하면 그것은 교류다. 상대가 말을 하고 내가 공감하는 순간, 한 인간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다.'                                         

[김승호,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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