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민의 문화 BPM> 마이클 잭슨,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떠난 것은?
<주정민의 문화 BPM> 마이클 잭슨,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떠난 것은?
  • 김변호
  • 승인 2015.06.2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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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6주기, 오늘은 유난히 그가 생각나는 하루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수 많은 팬들을 떠난 지 6주기가 되었다. 그는 1958년도에 태어나 2009년 6월 25일까지 생을 살았으며 1963년, 그가 5살 때 그의 가족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로 목소리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 이후 1968년 모타운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으며 그 다음 해인 1969년 최초 싱글 앨범인 <I Want You Back> 을 발표하였다. 1971년 13세였던 그는 본격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1972년 그의 히트 곡 “ben”을 통해 빌보드 차트를 장악했다.


이후에도 “스릴러”앨범을 통해 전 세계 1억 300만장의 최다판매기록 기네스에 등재되기도 했고 “빌리진”,”비트잇”, 아프리카 기아로 인한 난문 구호를 위해 작곡한 “위아더월드”, “맨 인 더 미러” 등 대중적이면서 그가 갖고 있는 색을 띈 음반들이 연이어 성공했다. 특히 1983년 모타운 25주년 공연에서 최초로 선보인 “문워크”댄스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많은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마이클의 삶이 그의 음악만큼 순탄하고 열광적인 삶을 살았다고 보긴 힘들다. 1990년대 들어서 그는 성형수술과 아동 성추행 의혹 등 끊임없이 언론에 부적적인 루머가 나돌았다. 본래 흑인의 검은 피부를 갖고 있는 그는 멜라닌 색소가 파괴되는 “백반증”을 앓게 되고 이를 통해 백인이 되기 위해 박피수술을 받았다는 루머를 받아야만 했다. 또한 1998년 자신이 건립한 네버랜드에서 13세 소년을 성 추문 한 혐의로 피소되었고 2003년에도 사기전과 범죄자가 자신의 아들을 성추행했다며 잭슨을 고소했지만 모두 사기극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런 루머들을 통해 잭슨의 음악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응도 보였다.


한편 그는 수 많은 히트곡과 루머를 남기고 2009년 약물과다 복용 으로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자살과 타살, 살해 등 여러 사인을 주장하고 있고 당시 열렬한 팬들 중 “베르테르 효과”로 인해 자살시도를 한 팬도 있었다.


2009년 오늘, 세상을 떠난 마이클이 남긴 것은 과연 수많은 히트곡과 기네스기록, 아직도 풀리지 않은 루머들 일까? 마이클은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았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외형적으로 병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적으로도 많은 상처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만의 음악을 위해 혼심의 힘을 쏟았다. 5살 어린 소년에서부터 팝의 황제에 이르기까지 피나는 연습과 엄청난 공연들을 소화해야 했고, 퍼포먼스를 연구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은 영원하다. 아직도 “빌리진”의 전주만 들으면 대중들은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되고 “문워크”를 연상하게 한다. 그는 인스턴트 음악이 아닌 영원한 음악을 추구하고 만들어왔다. 사후 발표 된 앨범 역시 안정된 비트와 세련된 가사를 갖추고 있었고 어쩌면 그가 죽은 뒤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6월 25일, 마이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의 아픔과 기쁨의 감성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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