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에 대한 진실
로힝야족에 대한 진실
  • 이숙경
  • 승인 2018.03.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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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적 정의와 진리

편집주: 애즈베리신학교의 비교문화학 박사과정중인 데이빗 무어가 로힝야족에 대한 기고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이중적 정의와 진리: 로힝야족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데이빗 무어 (애즈베리신학교)

 

로힝야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처음 끌었던 때는 2012년, 약 10만명의 로힝야족이 수많은 보트를 나눠타고 미얀마로부터 탈출했을 때이다. 그후 사람들을 그들을 “보트 피플”이라 불렀다. 하지만 로힝야족이 본격적으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7년 8월 27일, 450명의 과격파 이슬람인들로 구성된 ‘아르칸 로힝야 구세군’(ARSA)이 버마 불교 파출소들을 습격하고, 이를 버마 정부군이 무력으로 진압했을 때이다. 이 일로 죽은 과격파 로힝야 이슬람인들과 버마 불교인들의 수가 무려 200명에 달했고, 약 60만명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하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이 때 서방의 언론들은 로힝야 피난민들을 집중 조명했지만, 불행히도 ‘아르칸 로힝야 구세군’이 버마 불교 파출소들을 선제 공격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비록 로힝야족 문제가 매우 복잡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통해 그 복잡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로힝야족은 어떤 사람들인가? 둘째, 로힝야 이슬람인들과 버마의 불교도 사이에 어떤 분쟁의 역사가 있었는가? 세째, 현재의 사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첫째, 로힝야족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에 대해 두가지 상반된 해석이 있다. 첫째, 로힝야족에 따르면 “로힝야”라는 말은 벵갈어 “루간가”에서 유리한 것으로 미얀마의 라킨(Rakhine) 주에 사는 원주민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라킨 지역의 원주민이라고 주장하며, 미얀마의 다른 원주민들인 카친족, 친촉, 샨족, 카야족 등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의 그런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1820년대 영국인들이 방글라데시로부터 불법적으로 데려온 “벵갈 노동자”로 부른다. 따라서 미얀마 장부는 “원주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로힝야라는 용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국제 사회에도 그 용어의 부적절성을 주지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미얀마 정부는 프란시스 교황에게도 로힝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둘째, 로힝야 이슬람인들과 버마의 불교도 사이에 어떤 분쟁의 역사가 있는가? 먼저, 이 둘은 싸우는 이유는 로힝야족의 정체에 서로 다른 해석과 관련 있다. 로힝야족에 따르면, 자신들을 방글라데시로부터 이주한 “벵갈 노동자”라고 부르는 미얀마의 불교도들 때문에 자신들이 소외되고 차별받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라킨 주에서 약 400년 동안 살아왔다고 주장한다. ‘로힝야’라는 말도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1772년 외국인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그런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들이 미얀마 역사와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주장한다. 그들은 1820년대에 영국인들이 방글라데시로부터 들여온 노동자에 불과하며, 당시 영국인들도  그들을 “로힝야”로 부르지 않고 “방글라데시 불법 노동자”로 불렀다는 주장이다.

 

미얀마 정부가 집요하게 “로힝야족”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 용어가 자신들이 미얀마의 원주민이라는 로힝야족의 주장을 도울 뿐 아니라, 로힝야족보다 훨씬 전에 라킨 주에서 살아왔던 원주민 불교도들과 땅 소유권 분쟁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비록 최근에 로힝야 문제가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만, 라킨 주 안에서 로힝야족의 문제는 누가 원주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지는가에 대한 매우 오래된 분쟁인 것이다.

 

세째, 로힝야족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돌 수 있는가? 미얀마 정부의 복안은 무엇인가? 아웅산 수지의 역할은 무엇인가? 서방 언론들은 로힝야족에 대한 군사 작전을 용인했다는 이유로 아웅산 수지를 강하게 비난해 왔다. 특히 영국 정부는 그녀에게 수여된 “도시 자유상”도 철회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아웅산 수지의 권력이 제한 적이라는 것이다. 과거 군사 정권 시절 만들어진 2008년 헌법에 따르면, 집권당의 리더인 아웅산 수지는 통치 권력을 군대의 수장과 나누어야 한다. 이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지는 로힝야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강한 의지와 원칙을 가진 사람이다.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지는 로힝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도록 전 세계에 호소하고 있다. 전 유엔 총장 코피 아난에게 로힝야 문제에 관한 보고서도 쓰게 하였다. 최근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로힝야족들이 미얀마에 돌아올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무에 착수했다. 또한 합법적으로 미얀마에 들어온 일부 로힝야족들에게 미얀마 시민권도 부여한 1982년 시민권법도 재확인했다. 하지만 아웅산 수지는 여전히 그들을 “로힝야족”이라 부르지 않고 “방글라데시인”이라 부르기 원한다. 그들을 “로힝야족”이라 부르는 순간, 진짜 원주민인 불교도들의 권리가 침해되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지는 버마 불교도가 라킨 주의 원주민이고 로힝야족은 이주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라는 인식 위에서 그 둘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는 로힝야족의 요구를 무조건로 수용하라는 서방의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라킨 주에 사는 원주민 불교도들과 이후에 방글라데시로부터 이주해 들어온 로힝야족 사이의 문제는 서방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얀마 정부의 소수 민족 탄압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두 집단 사이의 분쟁이다. 분쟁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분쟁과 관련한 정확한 역사적 “팩트”들을 정리하고, 그 위에서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즉 원주민 불교도들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로힝야족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이중 정의”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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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vid M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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