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900일을 못 넘긴다”
언젠가 모 방송사가 ‘사랑’이란 주제를 사람의 뇌 촬영을 통해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방영한 내용이다.
114쌍의 연인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실험을 통해 정신적 신체적 반응이 변한 결과라 하니 신뢰도 갈 만한 결과로 보인다.
사랑의 온도가 식는 900일을 1년이라는 365일로 나누면 2년1개월15일정도가 된다.
소위 사랑으로 가려졌던 상대방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좋았던 콩깍지가 벗겨지는 기간인 듯 하다. 그 이후는 결혼상대로 또는 연인으로서 관계를 유지할 지를 두고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의 잣대를 갔다 대는 시기로 접어든다는 의미다.
사랑의 온도 보존기간이 이렇게 짧은 것일까? 하지만 약혼을 해 놓고 곧 파혼을 하고, 신혼여행길에서 곧 바로 이혼을 결정하는 요즘 세태를 보면 이해가 가는 숫자이기도 하다.
결혼 후 3년 이내에 이혼하는 율이 약1/3을 차지한다는 어느 신문기사의 통계청 인용 보도가 이 분석결과를 어느 정도 뒷받침 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한다.
만난 지 100일 또는 300일을 기념하기 위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풍습은 무언가 구실을 삼아 하루 하루의 만남이 더 의미 있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거니와, 100일 또는 300일의 고지까지 달려 온 날들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의미인 것도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다소 우스개 소리로 들릴 줄 모르지만 최근 자녀들이 결혼할 나이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4원칙을 지키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1)혼인신고는 벌금을 물더라도 최대한 늦게 하고
(2)집은 전세 또는 월세로 얻어주며,
(3)아이는 3년 뒤쯤 갖게 하고
(4)며느리 될 신부(또는 신랑)에게는 패물은 어떤 핑계를 대던지 값싼 것으로 해 주라는 것이다.
이혼 걱정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시키는 부모들의 심리가 그대로 노출된 슬픈 이야기인 듯 하다. 이쯤 되면 “사랑은 900을 못 넘긴다” 라는 말이 꽤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태가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900일이 아닌 9,000일을 3곱이나 더한 일생을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만난다.
수필가 피천득씨는 그의 수필 ‘인연’에서 아사꼬를 그렇게 사랑한 것 같다. 청소년기에 아사꼬에 대한 사랑하는 감정을 갖게 되고, 그녀가 자기 아닌 다른 남자에게로 결혼을 한 후 먼발치서 늙어가는 모습 그대로 까지 사랑한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니 만났어야 했던 마지막은 백합처럼 시들어 가는 모습이었다는 아사꼬…
이 짧은 수필의 글이 마음에 사라지지 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우리들 각자의 사랑에 대한 영원성 추구가 피천득의 '인연'에 투영되어 9,000일을 3곱절하는 날보다 많게 오래도록 지속하고픈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젊은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조건이 경제력, 미모 등으로만 평가되는 시대에 무슨 사랑 타령이냐고 이야기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사랑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너무 공허 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글 : 조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