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의 연인들
라벤더의 연인들
  • 조문형
  • 승인 2016.03.15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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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3. 개봉 (103분)

감독: 찰스 댄스

주연: 매기 스미스(자넷役), 주디 덴치(우슬라役), 다니엘 브릴(안드레아役) 


   

누군가를 사랑한단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나이와 언어가 달라도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가 ‘라벤더의 연인들’이다.

자칫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를 명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와 감독의 신중한 연출로 라벤더 향기처럼 은은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은 1930년도 유대인 학살이 절정을 이루던 암흑의 시기이다. 한 폴란드계 유태인 청년이 폭풍우가 치던 날 밤, 난파된 배에서 영국의 작은 해안 마을로 떠 내려온다. 이 작고 조용한 해안마을에는 평생 독신으로 서로 의지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는 자넷과 우슬라라는 자매가 살고 있다.


커다란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안드레아를 발견한 것은 두 자매 중 동생 우슬라이다. 자신들의 삶에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믿던 두 자매는 젊고 아름다운 낯선 청년에게 자연스럽게 묘한 감정이 생긴다.

두 자매는 때로는 엄마 같은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여인 같은 수줍은 시선으로 이 의식을 잃은 청년을 간호하게 된다.


며칠 뒤 의식을 찾은 청년의 이름은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폴란드인이기에 독일어는 할 줄 알았지만 영어는 전혀 못했다. 그래서 두 자매와 대화가 쉽게 통하지 않았고, 다리를 다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안드레아는 두 자매의 극진 한 돌봄을 받게 되고, 우슬라는 안드레아에게 간단한 영어를 하나씩 가르치고 조금씩 소통하면서 가까워진다. 우슬라는 안드레아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안드레아의 건강이 점차 회복되고 짧은 영어단어와 바디 랭귀지로 소통하던 중 그가 바이올린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웃에게 빌린 바이올린을 그에게 쥐어준다. 그 때 그는 비로소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껏 대화가 되지 않아 안드레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두 자매는 그의 연주를 통해 그가 능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안드레아의 바이올린 연주를 바라보던 우슬라의 눈빛은 훌륭한 연주에 대한 경이로움과 절망감이 함께 느껴진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느낄 수밖에 없는 상대적 절망감과 너무나 벅차서 느껴지는 불안감 같다. 이런 불안함은 이 마을에 휴양차 와 있는 젊은 여류화가 올가가 나타나면서부터 더욱 증폭된다. 

 

우연히 안드레아의 연주를 듣고 발길을 멈춘 올가는 안드레아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다. 올가는 독일어가 유창해서 안드레아와 대화를 쉽게 나누게 된다. 게다가 젊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여류화가 앞에서 두 자매는 더욱 불안해지고 질투하는 마음도 생긴다. 올가는 재능 있는 안드레아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인 자신의 오빠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는 편지를 두 자매에게 보낸다. 그것을 본 우슬라는 안드레아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편지를 화덕 속에 던져 태워 없앤다.

작지만 예쁘고 소박한 라벤더의 정원처럼 그렇게 자신들의 품안에 안드레아가 있으면 좋을텐데, 그저 함께 있어주기만을 바라는 기대도 그녀들에게는 욕심이다.

어느 날 안드레아는 올가의 오빠가 영국에 순회공연을 와 있다고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당장 떠나야 한다고 재촉한다, 안드레아는 갑자기 서두르는 올가의 말에 당황하지만, 두 자매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올가와 함께 런던으로 훌쩍 떠나 버리게 된다. 말없이 떠난 안드레아 소식에 우슬라는 언니 품에서 소리내어 운다. 이 장면에서도 주디 덴치의 명연기는 은발의 할머니지만 마치 사춘기 소녀가 첫사랑에 아파하는 것처럼 애틋하고 예쁘게 보여준다.

안드레아가 떠난 이후 런던으로부터 온 소포에는 올가가 그린 안드레아의 초상화가 그려진 액자가 들어 있었다. 우슬라는 그가 떠난 빈 방에 그 그림액자를 걸어놓는다. 그리고 안드레아의 초대로 우슬라와 자넷은 런던에서 열리는 안드레아의 공연에 참석한다.

안드레아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모습을 감동스럽게 지켜보면서 우슬라는 안드레아와 함께 한 시간들을 회상해본다. 바닷가를 함께 산책하며 주운 돌을 건네던 모습, 자신들이 사준 새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던 모습, 라벤더의 정원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 오토바이를 타고 추수감사절 파티에 가던 그의 뒷모습 등...

연주가 끝난 이후 자넷과 우슬라는 안드레아와 반갑게 해후를 하는데, 연주를 성공리에 끝낸 안드레아는 저명한 인물들과 인사를 나눠야 하기에 두 자매는 안드레아와 짧은 만남에 아쉬움을 남기고 공연장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자넷과 우슬라는 둘이서 해변을 산책하며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라벤더의 연인들’은 주디덴치와 매기스미스라는 영국이 자랑하는 베테랑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고, 영국풍의 소박한 정원을 보는 것도 즐거운, 잔잔하면서 지루하지 않은 영화이다.

‘전망 좋은 밤’, ‘미세스 브라운’ 등으로 영국 아카데미상을 5번이나 거머쥐고 007 시리즈의 본드 상관 M역으로 유명한 주디덴치는 은발의 머리를 한 할머니지만, 뺨에는 소녀처럼 홍조를 띄면서 청년 안드레아에 대한 마음을 설레이는 첫사랑처럼 보여주는 우슬라역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이와는 상관없음을 아름답게 연기한다.


‘미스 진 브론디의 전성기’로 영국과 미국에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았고, ‘해리포터’에서 미네르바 맥고나걸 교수로 낯이 익은 매기 스미스는 점잖고 담담하게 우슬라와 다르게 자신의 감정을 묻어 두는 언니 자넷을 연기했다. 청년 안드레아를 향한 동생의 마음을 눈치챈 뒤 마음속 미묘한 떨림을 감추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하는 모습에서 노배우의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배우 출신 ‘찰스 댄스’감독은 장면 연출 데뷔작인 ‘라벤더의 연인들’에서 조바심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인물들의 감정선을 짚어나간다. 무리하지 않은 감정 표현과 극적 전개로 언어의 차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편안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스크린을 바라볼 수 있다. 아름다운 청년 안드레아에게 꽃다발을 받아든 나이든 두 자매의 표정과, 자매의 사소한 말다툼, 청년과 노인인 자매와의 오해와 화해등 영화의 장면 속에 찰스 댄스 감독의 신중하고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노련하고 깊이있는 연기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끌어 간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조슈아 벨의 바이올린 연주이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으로 유명한 바이올리스트 조슈아 벨은 안드레아 역을 한 독일 배우 다니엘 브릴에게 직접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애정을 보이면서, 영화에 참여한다.

몇 해전 뉴욕 지하철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앞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한 남자에 대해서 해외토픽이 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 초라한 남자가 조슈아 벨이라는 것을 알고 뒤늦게 후회했다고 한다. 그 조슈아 벨이 이 영화에 흐르는 8곡을 모두 연주하며, 이 영화에 감성적으로 더 깊이 빠질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여성관객들은 영국풍의 풍경화 같은 아름답고 소박한 정원과 앤틱한 가구와 식기등 영국가정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글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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