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조불산'이라
'심조불산'이라
  • 조문형
  • 승인 2016.04.2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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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조불산’이라

 

 

성철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심조불산’이라 했네. 조사장 심조불산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함께 골프 라운딩을 하던 모 대기업 부사장은 첫 홀을 끝내고 둘째 홀을 걸어 가면서 밑도 끝도 없이 나에게 갑작스레 이런 질문을 던졌다. 평소 그의 인품으로 보아 허튼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의 질문에 답을 얼른 해야 했었다.

그러나 솔직이 그 뜻을 몰랐다. 아니 금시초문이었다. 한문께나 읽을 줄 안다는 주제에 모른다 하기는 체면이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가는 무식이 들통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난국을 피해갈 요량으로 “부사장님, 무슨 한자를 쓰는데요. 솔직히 처음 듣는 사자성어입니다” 라고 말했다.

 

“아니 이 사람 ‘심조불산’을 몰라서야 어디 함께 어울리겠는가. 성철 스님이 뉘신가. 지난 1993년도 해인사에서 입적하기 까지 ‘한국불교의 법맥’, ‘선문정로’, ‘영원한 자유’ 등을 출간하셨고 1981년 대한불교 조계종 제7대 종정에 취임하시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말씀하신 분 아닌가. 대 스님께서 말씀하신 ‘심조불산’을 모른대서야 어디 이야기가 통하겠는가.”

 

부사장의 성철 스님에 대한 지식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도 독실한 불교 신자로 평소 성철 스님을 무척 존경해 온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실 나는 그의 이야기의 10분의 1도 알고 있는 바가 없었다. 겨우 아는 것이라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말씀하신 것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신자가 아닌 다음이야 골치 아프게 그 분의 설법 내용이나 또 어떤 책을 출간하셨는지 등을 줄줄 외우고 살 필요가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고민 끝에 나는 ‘심조불산’의 의미를 정말 잘 모르겠다고 했다. 부사장은 그럼 라운딩이 끝날 때까지 생각을 더 해 보라고 하면서 계속 다음 코스를 돌았다. 그러나 그 놈의 ‘심조불산’의 숙제를 머리 속에 넣어 둔 뒤부터는 나의 스윙은 부자연스러워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경을 쓰면서 팔에 힘이 들어갔는지 급기야는 오비를 날리기도 했다. 알듯 말듯 그 놈의 숙제 부담감이 나의 골프 실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평소 보기 플레이는 하는 편인데 더불보기를 하는 홀이 많아졌다.

 

부사장은 나의 이런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내심 입가에 웃음을 담고 다녔다. 그러다가도 중간중간 멋진 샷을 날리고는 ‘심조불산’이라 하는 말을 들으라는 듯 되풀이했다. 전반전을 다 돌아 나왔지만 나는 ‘심조불산’의 해석 언저리에도 가지 못했다. 혹 ‘심조불산(心造佛山)즉 마음을 짓는 것이 큰 부처다’ 라고 억지로 짜 맞춰볼까 했으나 틀렸다고 하면 오히려 사람만 더 우습게 될 것 같았다.

 

풀리지 않은 숙제를 마음 속에 담고 다니느라 전반전 9홀을 어떻게 돌았는지 모르게 돌았다. 클럽하우스 아래 서코스는 후반전 라운딩을 기다리는 골퍼들이 2팀이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사장은 기다리는 동안 그늘집에서 요기나 하자면서 모자를 벗어 들었다.

 

그는 일부러 나를 창가가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나서는 ‘심조불산’이라고 또 되뇌었다. 이제는 그의 말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알아낼 필요가 없으려니와 그 보다는 스코어가 엉망이 되어 더 이상 여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창가로 보이는 티박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골퍼는 시원스레 샷을 날리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동행들이 굿샷을 외쳤다. 다음 차례의 골퍼도 그런대로 페어웨이에 공을 안착시켜 놓았다. 마지막 차례의 골퍼는 멋진 스윙을 하였으나 공은 슬라이스를 내 오비말뚝을 훨씬 지나 산자락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순간 그 곳에 쳐 놓은 현수막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산불조심’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써져 있었다. 산불조심!. 심조불산? 나는 순간 무슨 큰 진리라도 깨달은 사람처럼 무릎을 쳤다. 그렇다 분명 부사장은 산불조심을 꺼꾸로 ‘심조불산’으로 읽어놓고 나를 그렇게 골탕을 먹인 것이었다. 슬그머니 화도 났지만 마음을 묶고 있던 숙제를 해결했다는 해방감에 웃음이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부사장이 파안대소를 하면서 나에게 성철스님의 말씀을 깨달았냐고 물었다. 


“이 보게, 이 좋은 자연에서 즐겁게 놀면 됐지. 숙제 같지도 않은 숙제를 가지고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나. 문제는 때가 되면 풀리는 법, 노는데 마음을 쏟게나”

병 주고 약 주는 것인가. 아무튼 ‘문제는 때가 되면 풀리는 법, 노는데 마음을 쏟게나’ 라고 이야기 한 그의 말은 문제가 크든 작든 간에 쉽게 놓지 못하는 나의 성격을 꼬집는 것 같기도 했다.

 

후반전 나는 첫 티샷을 멋지게 날렸다. 스윙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부사장은 굿샷을 크게 외쳤다. 나도 티박스를 기분 좋게 걸어나오면서 말했다.

 “심조불산이라”

골프장의 아름다운 풍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 조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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